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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Aug 20. 2019

서른아홉의 퇴사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하며 돈만 벌 수 있다면야


입사만큼이나 퇴사도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이었다. 서른아홉 가을의 어느 날, 십칠 년에 달하는 길고 긴 회사생활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이나 뉴욕의 그들처럼 머리가 하얗게  때까지 멋지고 당당한 현직 편집자로 일하고 싶은 마음굴뚝같았지만 나를 둘러싼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만약 그만두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3, 4년? 그럼 그 이후엔? 그때 가서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한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두려워졌다. 어차피 편집자로 늙을 수 없다면 오히려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굴러가지 않자꾸만 삐걱대는 현실에서 벗어나 내 삶을 좀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틀에 박힌 일상에 숨 쉴 공간을 주고도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상엔 책만큼이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다. 마흔이 되기 전에 내년부터 살아갈 제2의 인생을 잘 준비하고 싶었다.


한두 해 전인가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뭘 하며 늙고 싶냐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남편은 여행 가이드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일본어를 꽤 하는 남편은 눈도 아프고 어깨 아프다며 컴퓨터는 제발 그만 들여다보고싶다고 했다. 일본어를 활용해서 일을 해보고 싶고, 야외로 훌훌 다니는 가이드가 오히려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리미리 자격증이라도 따놓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남편은 그로부터 1년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내 눈앞에 들이밀고야 말았다. 아마 내가 몹시 반대할 줄 알았나보다.


흠, 그렇단말이지. 정말 통역안내사를 하고싶다는 얘기였다.

불안정하면 어떠랴. 한번 사는 인생,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하며 돈만 벌 수 있다면야.

이 지점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관심사 그리고 나의 미래. 나는 어떻게 연관된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두 번째 인생을 꾸려가볼까 생각하던 차, 우리만의 개성을 담아 게스트하우스를 열어보기로 했다. 내성적인 내가 과연 안 되는 영어를 써가며 외국인들과 격의없이 어울릴 수 있을지 겁이 안 났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저질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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