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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Nov 23. 2020

죽음, 익숙하지만 낯선 우리의 그림자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다 읽고 하루가 지난 뒤에도

쉽사리 가시지 않는 깊은 여운을 남겨준

그런 강렬한 책이었습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책과 그걸 쓴 작가에게 미안합니다.

이런 좋은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과 생겨난 감정을

조리있고 유려하게 풀어낼 재간이

제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 글을 읽은 뒤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는 분들께

책에 대한 별 볼일 없는 인상만을 남겨줄까

걱정이 되어 꽤나 큰 부담을 느낍니다.


산뜻한 월요일 아침부터 쓰기엔

다분히 무거운 글감입니다.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얕은 생각들과

아직 제게 남아있는 이 감정의 여운이

좀 더 희미해져 버리기 전에

늦지 않게 책에 대한 소회를 남겨두고 싶어

조심스레 적어봅니다.


작가는 책 제목 그대로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는

특별청소부란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고인이 되어 떠나버린 자가

이승에 남겨놓은 뒷자리를 말끔히 치워주고,

그 사연 많은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주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름 없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 듯합니다.



그는 참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다양한 이들의 떠나간 뒷자리를 마주했습니다.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반지하에서 지하로

혈혈단신 집과 집을 전전하며

거실엔 침대가 아닌

연분홍색 텐트를 치며 살아온

외롭게 죽어간 한 30대 청년의 집을


집 내부의 모든 틈새를 청테이프로 막고

화로에 척화탄을 피운 뒤, 

치밀하고 꼼꼼하게 준비한 죽음 직전,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말끔히 구분해

착실히 분리수거를 하고 떠난 이의 집을


택배 박스만 한 케이지에서 태어나

한 평생 그곳에서만 삶을 영위했고,

주인의 무관심으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오랜 시간 방치되어 시체가 부패할 대로 부패해

털가죽과 뼈만으로 남겨져버린

여러 마리 고양이들의 집을


그는 그렇게

누군가의 사연 있는 죽음 뒤에 남겨진

수수께끼 같은 떠난 이의 빈 자리를

끊임없이 마주하고 마주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일이었고 일상이었습니다.


죽은 자의 집은

살아있는 자에게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을 무심히 던져주지만

그는 어느 질문 하나에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떠나간 이는 말이 없고

떠나간 이의 시간은

산 자에게 아무런 진실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 남겨진 여러 흔적의 조각들 속에서

그는 홀로 해답 없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볼 뿐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죽은 사람의 뒷자리를 보면

그 사람 삶의 일면이 보인다고.


어떤 이의 집에선

유족들에 의해

돈이 될만한 건 모두 털려버린 채

집이 도둑맞은 것처럼 난장판인

가족관계의 흔적이 남아있고,


어떤 이의 집에선

작은 냉장고 냉동실에

연인과 함께 나눠 먹으려고 사둔 것 같은,

덩그러니 하나 남은 쌍쌍바가

그 사람의 외로움을 말해주고


어떤 이의 집에선

서가의 수많은 서적들 속에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열정과 태도가 엿보이는

다양한 지적 흔적들이 남아있기도 하답니다.



죽은 이의 뒷자리에는

많은 공통된 현상들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았습니다.


특수청소부가

고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예외 없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겨주는 건

시체가 부패하여 생긴

짙게 남은 고약한 냄새라는 것.


주로 고독사로 돌아가셔

오랜 기간 방치된 분들은

이 시체의 끔찍한 냄새 때문에

주민들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공과금을 제때 못 내면

전기와 수도가 중단되어

노란 부적처럼 생긴 공단의 고지서들이

문 앞에 자비 없이 차갑게 붙어버린다는 것.


시체가 부패하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것처럼

반듯이 누워있는 멀쩡한 형상으로 유지되지 않고,

온갖 핏물과 오물이 흘러나와

몸과 바닥을 적신다는 것 등입니다.


이제껏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도 있었고

나름 죽음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실제로 죽은 자들의 집을 통해

생생한 죽음의 실상을 목도하고 나니

난 이제껏 정말 아는 게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작가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음이란 건 우리 모두에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말합니다.

너무도 뻔하고 식상한 말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깊이 와닿은 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떠나간 뒷자리를

묵묵히 치워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떠난 뒷자리는

스스로 정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후

사는 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볼 수 있다고도 말하더군요.


죽음이란 게

아직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면서도

어쩌면 너무나 가까이 있는 것이구나.

참 익숙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면서도

정말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무언가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깊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우리의 그림자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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