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지 D+10 (2020.06.21)
"사람들은 대체로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말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누구를 위해 쓰는가? 자신을 위해 쓴다. 엄청난 수의 청중을 머릿속에 그리지 말자. 그런 청중은 없다."
"문체가 엉망인 글을 쓴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뒤죽박죽이거나 오만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다."
책을 쓴 이 아저씨는 누구인가. 내 생각을 읽고 있나? 이 책 도대체 뭐지? 눈 앞에 펼쳐진 죽어있는 활자들이, 생생히 살아나 제 뒤통수를 후려치듯 얼얼하더군요. 오늘 아침까지 윌리엄 진서가 쓴 <글쓰기 생각쓰기>란 책을 읽었습니다. 1976년 초판이 나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바이블로 읽혔다네요. (책 뒷면이 그렇대요.)
최근 브런치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좋은 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어차피 쓸 거 잘 쓰면 좋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바이블의 가르침에 따라, 지금까지 나의 글쓰기는 어떠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셀프 피드백을 주고 받아보기로 합니다. (두근두근)
1부 - 2.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글을 난삽하게 쓰는 병이 있다. … 문장이 너무 간소하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의 비결은 모든 문장에서 가장 분명한 요소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데 있다. … 명료한 생각이 명료한 글이 된다. … 독자가 길을 잃는 건 대개 글쓴이가 충분히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이다. … 간소하게, 부디 간소하게 쓰자.
음. 이 아저씨가 내 글을 읽고 하는 소린가? 했지요. 요즘 휴대폰에서 브런치 알람이 종종 울립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면, 곧바로 다시 그 글을 읽어보곤 합니다. 지금까지 2주 동안 총 14개의 글을 썼는데, 모두 3번 이상은 읽어본 것 같네요. 글이란 게 참 신기해요. 오늘 마무리할 때 다르고, 내일 읽어보면 또 다르고, 일주일 뒤에 읽어보면 완전히 다른 글이 되어있지요. (백수일지는 항상 초고라, 그런 면에서 언제나 쓰는 나에게나, 읽어주시는 몇 안 되는 독자분들에게도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있는 글이에요. 죄송합니다.)
한 마디로 난삽합니다 제 글은. 구차한 의식의 흐름이란 변명을 하지만, 충분히 정성을 들이지 못하는 글인 건 맞지요. 오늘 이 글을 아침에 업로드하지 않고, 늦은 일요일 밤에서야 올리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야심 차게 하루에 하나 쓰기!라는 포부로 시작했지만, 이렇게 글을 막 써서 올려도 괜찮나 싶을 때가 많아요. 다른 글은 간격을 두고 몇 번 검토를 한 뒤 올리지만, 이 글은 매일 써야 하기에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앞으로 하루에 한 번을 올리더라도, (초고임에는 변함없겠지만) 좀 더 신경 써서 독자분들의 편안함을 위해 충분한 정성을 들이겠습니다. (노-오력)
1부 - 5.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 근본적인 문제인 만큼 근본적인 답이 있다. 자신을 위해 쓴다. … 독자가 여러분을 좋아하느냐, 여러분이 말하는 내용이나 방식을 좋아하느냐, 여러분의 유머 감각이나 인생관에 호의를 가지느냐 하는 보다 큰 문제에 대해서는 독자를 걱정하지 말자. 여러분은 여러분이고 독자는 독자다. 서로 잘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 글은 온전히 저를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느샌가부터 누군가 읽어주는 맛에 빠져, 처음의 일기라는 컨셉 보단 일상의 생각을 전하는 에세이처럼 변했지만요. 하지만 지금도 나를 위해 쓰는 글임에는 변함없습니다. 프라이빗한 일기도 따로 씁니다. 백수일지는 매일 한 편의 글이라도 꾸준히 써서, 글 쓰는 실력을 향상시키고, 생각을 정리하며 살기 위해 씁니다.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 독자의 존재를 무시할 순 없겠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마이웨이로 쓰겠다는 초심은 잃지 않겠어요. (고마워요 진서 아저씨.)
3부 - 13.비즈니스 : 업무와 관련된 글쓰기
지위가 높건 낮건 관리자들은 문체가 단순하면 생각이 단순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단순한 문체는 고된 노력과 사고의 결과다. … (조직 내 온갖 전문용어와 난삽하고 복잡한 표현으로 쓰여진 글을 가리키며)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즐거울 리가 없으니 읽는 사람도 즐거울 리가 없다. 이건 외계인의 언어다. … (내가 만약 독자라면) 아예 읽기를 그만둬버릴 것이다.… 조직에서 글을 쓸 때는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지위에 있든 자기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인조인간들 사이에서 진짜 사람으로 돋보일 것이다.
저는 관리자도 특정한 지위를 갖고 있는 권위자도 아니지만, 비슷한 관념에 사로잡혀 있단 걸 알았습니다. 문장이 단순하면 글의 깊이와 작가의 수준이 낮아 보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죠.(지금도 이 걱정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래서 대학시절에도 어떤 글을 쓰던 어휘와 문장구조에 많은 신경을 썼었지요. 있어 보이기 위해서. 수준 높은 단어를 구사하고, 문장을 현란하게 만들어 글을 통해 나의 수준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글은 누구를 위한 글도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우연히 대학생 때 썼던 글 몇 편을 읽었습니다. 정말 재미도 감동도 없더군요. 끝까지 읽는데 굉장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읽지 않을 거지 같은 글이었습니다. 쓰는 사람이 즐겁지 않고, 읽는 사람이 즐겁지 않으면 그 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중요한 대목인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독자보단 제가 먼저 즐거울 수 있는 글쓰기가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꾸준히 쓸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나를 잃지 않아야, 훗날 나를 좋아해 줄 독자도 잃지 않게 되지 않을까요.
책을 읽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중간에 생각을 멈추기 위해 또 다른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짱구만 굴리다 하루가 다 지나갔네요. 한 줌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을까 하여 윌리엄 진서 아저씨의 멋진 조언을 공유해봅니다. 또 브런치라는 멋진 곳에서, '글쓰기'라는 아름다운 에술을 하시는 작가분들에게 오늘의 글을 바칩니다.
평안한 일요일 밤이 되시길.
백수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