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피로스 Jun 22. 2020

백수인생, 세상을 살아가는 100가지 방법

백수일지 D+11 (2020.06.22)


사전 나빠요. 백수는 나쁘지 않아요.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둔 용칠이 화이팅.


백수란 말은 흰백에 손수자를 써서 '손이 허연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전적 정의는, '한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옛날엔 일을 안 해서 손이 깨끗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여겼나봐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죠. "나 요즘 백수야" 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세상이잖아요. 저는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요즘엔 백수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글들의 제목과, 새로 만든 웹사이트 아이디, 사업자 상호명까지 모두 백수백수...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게 '나 백수다' 라고 떠들며 다니죠.(부모님이 아시면 얘가 돌았나, 라고 생각하실걸요.) 이 나이에 일도 안 하고 돈도 못 버는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동네방네 떠들며 다니나. 예전 같았으면 돌멩이 맞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만큼 부끄럽지가 않네요. 아주 작은 생각의 전환이 제게 이런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줬습니다. 


백수만세. 이젠 거의 선동질처럼 느껴져요.


여러 SNS 계정에 써놓는 문구가 있습니다. 

"백수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냐, 직업이 없지 할 일이 없냐"

맞는 말이죠? 


오랜 시간 제가 처한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돈이 없는 대신 시간은 누구보다 많고, 직업은 없지만 어떤 일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이죠. 이 사소한 생각의 변화가 마음가짐을 바꿔 놓고, 저를 지배하고 있던 거대한 두려움은 작은 용기로, 예상치 못한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지금도 많은 것들이 두렵습니다. 앞날에 대한 불안이 있고,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앞으로도 이런 두려움은 계속해서 저를 괴롭히겠죠.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정신승리.


백수는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밖에 활용할 수 있는 나의 순수한 자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됩니다.


백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 모든 욕구와 감정에 집중할 수 있어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거죠.


백수는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아있죠. 어떤 일이든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의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경우의 수가 펼쳐지는 바둑판 위의 세계는 인간의 삶과 흡사하다죠. 삶의 무한한 가능성. 그게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100가지 방법. 그게 제가 살아가는 '백수'인생입니다. 


이 매력적인 백수의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모두 실직자가 되세요.)

(죄송합니다.)

 



백수만세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