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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Dec 23. 2020

글감 없는 글

하하하하하하하하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

가끔은 앞 뒤로 ±30분

주말은 제외

하루중 유일하게

글쓰기를 위해 내게 주어진 시간.


2시간 남짓한 이 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아니 이런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의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시켜 '그것'을 찾아낸다.


'글감'


멍.. 멍!
여기 어디 숨어있나?


망망대해와 같은 망상의 파도 속을 허우적대며

쓸 거리를 건져내려고 온갖 애를 쓴다.


'끙..끙....끄으응......'


눈을 감는다. 헤엄을 친다.

상상의 나래를 편다.

지나간 과거를 본다.

다가올 미래를 본다.

뭐든 잡히기만 잡히면 된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옆에 있는 책장을 바라본다.

지그시. 우두커니.

역시 멍...

머리를 쥐어뜯는다.

오늘은 여기에도 없나 보다.


운이 좋은 날엔, 영감의 세례를 받은 것처럼

솟구치는 많은 글감들 중 하나를 골라 쓴다.

하지만 대체로 오늘과 같은 평범한 날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눈 앞에 펼쳐진 백지가 떡하니 나를 막아선다.

내 머릿속의 상태를 투영한 듯하다.

참 하얗다.

새카만 커서가 내 속도 모르고

귀엽게 깜빡깜빡.

동시에 초점 잃은 내 눈도

멍하니 꿈뻑꿈뻑.


가뭄에 바짝 말라버린 논밭에서 

한포기의 풀을 찾는 기분이랄까.

냄비 바닥에 달라붙어 바짝 타버린

볶음밥을 박박 긁어내는 기분?

바짝 마른 행주를 쥐고 비틀지만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는 기분일지도.


전지적 아니고 무의식적 작가 시점
문뜩 보니. 너 참 잘생겼다.


한시간째 한 글자도 못 쓰고 있다가

부랴부랴 이 미친짓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의식의 흐름과 손가락의 선율에 나를 맡기고 있다.

어쨌든 11시가 되면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 (백수지만 부업한다.)


그렇게 글을 쓰기 위해

멍을 때리고 있는 내가

초점 잃은 내 눈을 통해

하얘진 내 머릿속을 지나왔다.


그렇게

한 편의

어처구니없는 글이 뚝딱 완성되었네 !?


하하하하하


백수는 이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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