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지 D+22 (2020.07.03)
백수가 되면서 TV가 좋아졌습니다. 일주일에 반드시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이고, 하나는 강형욱이 나오는 <개는 훌륭하다>입니다. 둘 다 정말 훌륭한 프로그램입니다 :) 근데 둘 다 12시가 넘어야 끝나서 다음날 늦잠을 유발합니다. 그래도 두 프로는 웬만하면 꼭 본방사수.
태어나서 한 번도 (큰?)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토끼, 거북이와 햄스터는 키워본 것 같네요. 하지만 그땐 반려동물이란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고, 저도 너무 어렸지요.
한국에 돌아오면, 반드시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워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머니 때문이었죠. 갱년기를 거치고, 허리를 다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못난 자식들은 역마살이 껴서 둘 다 해외로 나가 있고, 아버지는 직장이 멀어 주말에만 집에 오셨어요. 몇 년 동안 어머님께서 많이 외로우셨습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지요.
난관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아버지께서 강하게 반대하시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개고기를 좋아하십니다. 성남 모란시장이란 곳에 가면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시장이 있지요.(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지인들과 자주 그런 곳을 방문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왠지 모를 꺼림칙한 느낌이 드셨는지,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신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개는 아무튼 절대 안 된다고만 우기셨습니다.
더 중요한 건 제 생각의 변화였습니다. 강형욱씨가 나오는 TV프로그램 때문이었지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을 집 안에 들이는 새식구라고 생각하기보단, 사람을 위한 생명이 있는 도구 정도로 여겼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개통령을 보고 그의 신통방통한 개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감탄하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제 감정이 이입된 부분은 매주 방송에 나오는 문제견과 그 견주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니 강아지를 함부로 키우는 게 무서워지더군요. 저들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강아지를 키우다간 저들처럼 실수를 저지르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너무 귀여운 나머지 저 사랑스러운 친구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주인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전 하루빨리 나가서 독립할 생각이지만, 본가에 머물며 같은 집에 있는 동안만큼은 저 친구들에게 많은 사랑과 추억을 선물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좀 더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겠습니다. 나는 정말 견주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지. 아버지의 반대는 그다음 차차 해결해보도록 하지요.
-멍뭉이에게 쓰는 편지-
To.
내 집에 들어올 누군지 모를 멍뭉이
멍뭉아. 난 아직 널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넌 어딘가에서 우리 가족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겠지.
좀만 더 기다려주렴.
좀만 더 준비해서, 너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줄게.
보고싶다 큭ㅠ
그럼 오늘도
다들 좋은 하루 되시길
백수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