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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Nov 04. 2021

신해철, ‘해’에게서 ‘소년’에게 (2)

1989-1991

신해철이 세상에 내놓은 첫 노래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대학가요제 우승곡인 [그대에게]였다. 이후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고 데뷔한 무한궤도는 의욕으로 가득 찬 밴드의 1집 음반을 내놓았다. 신해철의 공식적인 첫 음반이기도 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바로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였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을
세상이 변해갈 때 같이 닮아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신해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소년이라는 키워드는 신해철이 데뷔할 때부터 일관되게 관심을 둔 주제였다. 이 노래에서 그는 ‘소년 시절’을 ‘파랗던 꿈’으로 표현하면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반면 현재 자신의 모습은 ‘세상이 변해갈 때 같이 닮아가는’ 부정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신해철은 자신의 모습에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실망이나 변명은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 왜냐면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스물두 살의 신해철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얼 찾기 위해 사는 것일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신해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부류의 주제는 사실 인류의 역사 내내 너무나 흔하게 다루어진 주제이기에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단지 흔해빠졌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해야 한다면 전 세계의 사랑 노래는 이미 멸종한 지 오래일 것이다. 이러한 주제가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것 자체가 이른바 순수했던 옛 시절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경이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이라는 방증이 아닐는지.  


하지만 신해철은 소년 시절을 긍정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단순히 그 시절로 돌아가기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일단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럴 수 있다 해도 그건 단지 퇴보,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밖에 못 된다. 하지만 눈앞의 어려움에서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기는 길을 선택하기에는 신해철이라는 인물의 자의식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렇기에 그는 걸어가던 길을 되돌아가는 대신, 홀로 걸어가기를 택한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신해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모든 소년은 결국 어른이 되고 언젠가는 죽는다. 그 시점에 서서 신해철은 질문을 던진다. 지나간 세월에 후회는 없는가. 나는 비록 어른이 되었지만 소년 시절의 꿈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가. 그렇기에 이는 질문이 아닌 선언이었다. 결코 소년 시절의 꿈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향후 삼십 년 가까이 펼쳐지는 그의 음악 인생을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굳은 다짐이었다.


물론 냉소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해철의 이러한 모습조차도 그저 젊음의 치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십대 초반은 물론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 성인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고, 종종 소년시절의 미숙함을 미처 다 벗지 못한 나이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신해철의 이러한 다짐은 특별할 것이 없으며 요샛말로 다소 뒤늦은 중2병 수준에 머무르게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쳤더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밴드 무한궤도가 첫 앨범을 끝으로 해산된 후 신해철은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농반진반으로 신해철의 아이돌 시절이었던 이 시기에 그가 처음 내놓은 음반은 사랑을 다룬 평범한 노래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발매한 2집에서 신해철은 앨범의 이름처럼 그 자신(Myself)에 대한 본격적으로 탐구를 시작한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지나치게 직설적인 나머지 낯부끄럽게까지 느껴지는 일련의 노랫말을 통해, 신해철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돈, 집, 차, 여자, 명성, 지위’로 대변되는 세속적인 가치 대신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을 찾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속적인 가치를 원한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사회의 주류에 합류하지 못하고 배척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주류에서 배척되는 건 사람을 두렵게 한다. 그렇다면 신해철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의 대답은 아니라는 단언,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난 약해 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 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신해철, [길 위에서]


이를 통해 신해철은 그가 일평생 말하고자 했던 바의 기틀을 확립했다. 다소 과장스럽게 표현하자면 이후 그가 내놓은 노래들은 동일한 주제를 다룬 변주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노래들의 가치가 폄훼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후의 노랫말들을 보면서 그가 어떠한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해 갔는지를, 그러면서도 어떠한 변화를 겪어 갔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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