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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ug 29. 2019

왕련,
촉한 국가재정의 기틀을 닦다

삼국지의 인물들 06

  왕련은 자가 문의(文儀)입니다. 원래 형주 남양군 출신이었는데 유장 시절에 익주로 들어왔습니다. 현령에 임명되어 재동현이라는 곳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유비가 유장을 공격하자 성문을 굳게 닫고는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장의 충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유비의 마음에 들었던지, 유비는 무리하게 그를 핍박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후 유장이 항복하자 왕련은 유비의 휘하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 볼 점은 왕련이 오래도록 유비를 섬겨 왔기에 논공행상을 해 주어야만 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익주에 기반이 있는 호족이어서 회유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인물도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는 단지 외지에서 온 뜨내기이자 한때 유비와 적대했던 자의 부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유비는 그를 높이 보아 중책을 맡겼지요. 그게 단순히 전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능력이 있었단 거죠.




   왕련은 유비의 휘하에서 십방현과 광도현의 현령이 되었다가 다시 사염교위가 됩니다. 그런데 사염교위(司鹽校尉)는 한자의 뜻 그대로 소금(鹽)을 담당하는 벼슬(司)이거든요. 이게 엄청 중요합니다. 왜냐면 사염교위는 촉한의 통치 기반이 되는 국가재정의 확보를 담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익주는 산출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만 결국에는 1개 주(州)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군사를 양성하면서 공세적으로 몇 번이나 북벌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결국 국가의 재정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소금과 철의 전매(專賣)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철과 소금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하거나, 혹은 민간에 맡기고 대신 세금을 거두는 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천일염이라 하여 바다의 염전에서 소금을 만드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촉한은 내륙 국가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소금은 대체로 바다가 아닌 암염(巖鹽)에서 얻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소금이 포함된 돌이나 흙에다 물을 타고 다시 솥에 들이부어 펄펄 끓임으로써 소금을 분리해 내는 거죠. 


   촉 지역은 놀랍게도 지표면으로 새어 나오는 천연가스(혹은 석유)를 활용하여 강력한 화력으로 소금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후한 시대부터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촉한은 이 기법을 개량하여 본격적인 소금 생산 체제를 만들고 고급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거의 금을 허공에서 찍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얻어진 강력한 화력은 자연스레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담금질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철의 품질을 높이는 역할도 했습니다. 남중 지역에서는 예부터 제철 사업이 발달해 있었죠. 제갈량은 그 제철 사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킵니다. 이로서 촉한에서는 다양한 무기가 개발되었으며 병사들은 품질이 뛰어난 무기와 갑주로 무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촉한의 국가 재정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소금과 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관할한 사람이 바로 사염교위 왕련입니다. 제갈량이 나라를 경영했다면, 왕련은 그 기반이 되는 재정을 마련하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예, 두기, 유간 여러 인재들을 발탁하여 기용함으로써 자신이 없더라도 국가의 재정이 잘 돌아가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왕련은 그런 공을 인정받아 촉군태수에 흥업장군으로 승진합니다. 촉군태수의 중요성은 이미 양홍 편에서(삼국지의 인물들 04) 입이 닳도록 설명한 바 있지요. 그리고 흥업장군은 무려 이엄이 역임했던 장군호입니다. 엄청난 요직으로 승진한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금 관련 업무는 그의 소관으로 있었다 하니 얼마나 능력을 인정받았는지(혹은 제갈량이 사람을 얼마나 험하게 부려먹었는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유비 사후, 승상 제갈량은 부를 열어(開府) 실질적인 나라의 통치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 왕련은 승상부의 장사(長史)로 발탁됩니다. 장사는 고위 관료에게 소속된 속관(屬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제갈량은 국무총리이고 왕련은 국무조정실장이라고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승상 제갈량이 자리를 비울 때면 장사 왕련이 그 일을 대리하죠. 그런 핵심적인 지위에 올랐다는 건 왕련의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는 일이며, 동시에 제갈량이 얼마나 국가 재정 확보를 중요시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왕련은 225년, 제갈량이 남중을 정벌하러 가기 전에 사망합니다. 그는 생전에 제갈량의 남중 정벌을 끝까지 뜯어말렸다고 하지요. 혹시라도 승상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갈량 생전에 촉한은 훨씬 덩치가 큰 나라를 상대로 오히려 공세적으로 나서며 거의 매년 북벌을 감행하여 무수한 물자를 소진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라의 살림이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유했고, 창고에는 돈과 비단이 그득했지요. 그만큼 재정이 튼튼했다는 뜻입니다. 그 막대한 재정 수입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할 만한 핵심적인 경제 관료가 바로 왕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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