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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ug 24. 2019

양홍,
드러나지 않은 충실한 조력자

삼국지의 인물들 04

  양홍은 자는 계휴(季休)이고 익주 건위군 무양현 사람입니다. 본래 유장 밑에서 관리를 했는데 딱히 높은 지위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자 이엄이 건위태수가 되었는데 건위군 출신인 양홍을 공조라는 직책에 임명하죠. 요즘으로 치면 건위시청 소속의 인사담당자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엄의 어떤 지시에 반대했고, 그런데도 이엄이 그 일을 밀어붙이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져 버립니다. 성깔이 꽤 있었나 봐요. 


   이후 유비가 한중에서 조조와 일전을 벌일 때, 힘이 부치자 급히 성도의 제갈량에게 사람을 보내 병사를 더 보내라고 재촉합니다. 그런데 제갈량은 뜻밖에도 양홍을 불러 이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죠. 양홍은 대답합니다. 

   "한중은 익주의 목구멍 같은 곳이니 한중을 잃으면 우리는 죄다 결딴나는 겁니다. 마땅히 남자는 싸우고 여자는 군량을 수송해야 하는 상황인데 뭘 미심쩍어하며 물어보시는 겁니까?"


   자. 양홍의 답변은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제갈량 또한 그 사실을 모를 리 만무하죠. 그런데도 왜 굳이 양홍을 불러 이걸 물어봤을까요? 


   군사를 추가로 보낸다는 건 단순히 병력의 위치를 옮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유비는 한중에 가면서 이미 가용자원을 죄다 박박 긁어갔습니다. 그 상황에서 또다시 병력을 요구하는 건 결국 강제로 징집해서 보내라는 말이죠.


   징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가정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을 강제로 데려가 복무시키는 거죠. 당연히 극심한 반발을 삽니다. 전장에 끌려가 개죽음하기 싫은 자들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무척 높았습니다. 그러한 실제 사례도 다수 있습니다. 설령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산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농업이 국가경제의 중심인 시대에 강제징집을 하면 총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징집은 그만큼 정치적/사회적 부담이 극심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징집한 병력을 훈련시키고 무기와 갑주를 갖추어주는 것 또한 엄청난 비용과 행정력이 수반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제갈량이 굳이 양홍을 부른 이유가 눈에 보입니다. 네가 해라.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할 수 있지? 제갈랑은 그렇게 물어본 겁니다. 그리고 양홍은 이렇게 대답한 거죠. 맡겨만 주십쇼.


   당시 유비의 수도인 성도현은 촉군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도현이 수도고 촉군이 수도권 전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게다가 태수에게는 행정권은 물론 군사권까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촉군태수는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중요한 직책이었죠. 유비는 당연히 자신의 최측근을 촉군태수로 임명했습니다. 바로 법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유비를 수행하여 한중에 가 있었습니다. 촉군태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갈량은 유비에게 표를 올려 양홍을 임시 촉군태수로 삼았습니다.




   양홍의 행정적인 활약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홍은 일을 잘 처리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촉군태수가 됩니다. 이후 익주의 치중(治中)으로 승진하죠. 치중은 치중종사사(治中從事史)의 줄임말인데 한 주를 다스리는 자사를 보좌하는 지위로 별가(別駕) 바로 다음입니다. 말하자면 익주도청 행정직군의 넘버3가 된 셈이니 양홍이 맡은 바 임무를 완벽하게 해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몇 년 후, 유비가 이릉에서 대패한 후 병에 걸려 백제성에서 드러눕게 됩니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유비는 승상 제갈량을 불러들이죠. 수도 성도는 태자 유선이 지키고 있었지만 텅 빈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가태수인 황원이라는 자가 이 때를 틈타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양홍은 황원의 움직임을 꿰뚫어보고 완벽하게 대처함으로써 황원을 격퇴합니다. 하마터면 수도가 반란군에게 털릴 뻔한 큰 위기를 수습한 겁니다.


   이후로도 양홍은 몇 차례나 승진합니다. 하지만 거듭된 승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촉군태수를 겸임하죠. 그만큼 제갈량은 그를 신뢰했습니다. 북벌을 위해 한중에 주둔해 있었던 제갈량은 후방의 일을 수하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촉군태수 양홍은 승상부의 장사 장예, 참군 장완과 함께 실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양홍은 성격이 공명정대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업무에 개입시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때문에 오랜 친구인 장예와의 우정을 잃은 적조차 있습니다. 장예의 아들이 작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원칙대로 처벌했거든요. 또 하지 같은 훌륭한 인물들을 발굴해 추천하기도 했지요. 제갈량 또한 양홍의 그런 신실한 면모와 사람 보는 식견을 높게 보아 종종 조언을 구하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양홍은 1차 북벌이 있었던 228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수 차례나 북벌을 거듭하였던 제갈량의 부담도 조금이나마 덜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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