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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Jun 03. 2023

우울증의 재발과 대처에 대해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24

우울증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지만, 그 과정을 거치는 도중에도 단기적으로는 상태가 훅 나빠지곤 합니다. 주식을 하는 분들이라면 그런 그래프를 쉽게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흔히 말하는 우량주나 지수추종 ETF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상향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급락하곤 하지요. 


저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처음 약을 먹고 나서 한 달 가량 지났을 때, 저는 상태가 매우 괜찮아졌다고 느꼈으며 이제는 우울증에서 벗어났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발작을 일으켜 버렸습니다. 그래프로 치자면 최고점에서 곧장 최하점으로 곤두박질친 겁니다. 


(참고 : 09화 두 번째 발작이 닥쳐왔습니다 (brunch.co.kr) )


그 때 이후로 우울증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딱히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우울증이란 손쉽게 낫는 병이 아니며, 증세는 수 개월에서 심지어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십 년 이상이 걸렸다는 체험담도 드물지 않으며, 심지어 우울증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동반자처럼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여럿 있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한두 해 쉴 때는 상태가 좋아졌다가, 다시 직장에 다니거나 일을 시작하면 나빠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니 솔직히 다소 절망스러운 기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우울증이 재발하여 발작을 또다시 겪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저는 지금 두 달 동안 병가 중입니다. 병가 이후 상태가 꽤 호전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매일 글도 쓰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울증의 증세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상태가 안 좋았을 때에 비하면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 버틸 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걱정도 됩니다. 과연 두 달 후에 복귀하면 내가 잘 근무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완전히 나아서 원래대로 돌아간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요. 그게 제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저로서는 모를 일입니다. 아마 의사도 모를 겁니다. 말 그대로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일이겠지요. 어쩌면 제 바람과는 정반대로,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상태가 악화되는 경험을 겪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한동안 괜찮다가 몇 달이나 몇 년 후에 갑자기 재발할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든 간에 잠시나마 업무 스트레스에서 멀어져 있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래요. 사실 내심으론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 번 우울증에 걸린 이상, 앞으로 제가 맞닥뜨려야 할 세상은 기존에 제가 알던 세상과 약간 다를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찬 결말도 보류해 두려고 합니다. 희망의 봉우리가 높을수록 굴러떨어졌을 때의 고통이 크다는 사실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울증을 나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가능한 잘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애써보려 합니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은 극복하고, 수용해야 할 부분은 수용하며, 저 나름대로 우울증의 재발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들을 하나씩 마련해 두려 합니다. 왜나면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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