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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Jun 01. 2023

우울증과 운동에 대해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22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이 바로 운동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너무나 실천하기 어려운 조언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야 누구나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격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운동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운동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하는 또다른 노동'이지요. 평범한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과 점심 시간을 합쳐서 열 시간 이상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밀려드는 업무 처리에 파김치가 되고 지독하게 붐비는 대중 교통 속에서 곤죽이 되다 보니, 운동을 할 시간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물론 대단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아침 일찍 일어나 수영장이나 헬스장을 다녀와서 출근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업무를 마치고 요가나 자전거 타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평범한 우리들은 기껏해야 점심시간에 잠시 회사 근처를 산책하는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산책은 안타깝지만 '운동'의 범주에 넣을 수 없습니다. 




우울증에 운동이 좋다는 명제 자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운동은 '일정수준 이상으로 격렬해서 신체의 호르몬 분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장기간의 지속적인 운동'을 뜻한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에 삼십 분쯤 걷고 들어오는 걸로는 택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우울증 환자가 운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상태가 안 좋은 날에는 말 그대로 무기력해지거든요. 그런 몸상태로는 가벼운 산책을 하기조차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하물며 격렬한 운동을 정기적으로 한다? 정말 어려운 과제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제대로 못 하는 일인데 우울증 환자에게는 더더욱 무리입니다.  


제가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을 때는 아예 밖에 나간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일어서다 쓰러지지 않으면 다행이었지요. 그럭저럭 괜찮다 싶어서 나가 본 날에도, 고작 15분 가량 걷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헉헉거리며 주저앉곤 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병가를 내고 상당히 완화되었음에도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그럴진대 과격한 운동은 도저히 엄두를 못 내겠습니다. 


물론 운동이 아니라 해서 산책 자체에 의미가 없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적당한 산책은 우울증 환자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일단 기분을 전환할 수 있고, 햇빛을 쬘 수도 있지요. 또 걸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기대는 하기 어렵습니다. 산책 정도로 우울증을 낫게 할 수 있었다면 우울증이라는 병 자체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또 상태가 안 좋을 때면 산책이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예컨대 산책 도중 지나친 사람들 둘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만 보고도 '저 사람들은 행복한데 나는 왜 불행한 걸까'하면서 극도의 우울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억지로 산책을 나갔다가 멈출 수 없는 울음이 터져서 더 곤란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저도 정답을 제시할 능력은 못 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울증 환자가 제대로 된 운동을 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거든요. 


다만 제 사례를 들자면, 저는 닌텐도 스위치에서 나온 운동 게임인 '링 피트'를 일주일에 다섯 번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플레이하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몸을 움직이기로 나 자신과 약속하고, 스스로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제게는 성취감을 줍니다. 


어떤 분은 제게 가족과 함께 운동을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무리입니다. 회사와 학교에 다니는 가족 전체의 일정을 맞추는 게 어디 쉽나요? 

어떤 분은 제게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운동을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무리입니다. 전혀 모르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 우울증 환자를 던져 놓으면 긍정적인 효과가 날 리 만무하죠. 

어떤 분은 제게 마라톤을 해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무리입니다. 걷지도 못하는 아기더러 달음박질치라고 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성취감을 쌓아 올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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