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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Nov 23. 2023

상사는 싫고 짜증나는 존재입니다

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06

상사는 마치 바퀴벌레처럼 싫은 존재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상사라 해도 없는 것만 못합니다. 상사란 기본적으로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이고, 나를 번거롭게 하는 존재이며,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이고, 나를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자기 주머니에서 내게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일을 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직원이 상사의 뒷담화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직원은 팀장을 욕하고, 팀장은 과장을 욕하고, 과장은 국장을 욕합니다. 인생의 진리죠. 




우리나라 공무원 조직에서 중간관리자 노릇을 하는 사람 대다수는, 일부 예외(행정고시 출신 5급 팀장이라거나, 외부에서 들어온 임기제라거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무 직원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직원 시절 술자리에서 팀장과 과장을 당연히 욕했을 겁니다. 부서장이 소집한 술자리에 따라가기 싫어 죽을 지경이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좋다고 했을 테고, 주말에 함께 등산을 가자는 미친 소리에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겠지요. 모두가 그런 시절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관리자로 승진하는 순간, 그들은 불치병에 걸립니다. 진단명은 '나는 다르니까' 병이며 발병률은 99%에 달합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치료제는 없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은 상사 수발을 들면서 오만 짜증을 냈지만, 이제 중간관리자가 된 자신은 그들과 달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도 자기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증세가 심해지면 심지어 직원들이 자신을 존경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당장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사고가 터집니다. 어떤 사고냐고요?


직원들이 사실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후, 

뜬금없이 배신을 당했다고 외치며 울부짖게 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세상에 상사를 좋아하는 직원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상사에게 웃는 낯으로 공손히 대해주는 건 그게 바로 사회생활의 요령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이 상사에게 술 한 잔 하자고 권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사가 서운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이 상사를 욕하지 않는 건 단지 상사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모를 수는 없습니다. 그 상사도 과거에는 직원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관리자들은 흔히 과거의 자신을 잊곤 합니다. 그리고 자기만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다르긴 뭐가 다릅니까? 사람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곰과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런 병에 걸렸던 적이 있습니다. 


곰과장이 직원이었던 시절, 어떤 상사는 점심을 먹은 후 꼭 산책을 하는 것이 버릇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밥을 먹은 사람들은 상사 뒤로 길게 늘어선 채 걸어가야 했지요. 상사와 가까이 붙은 사람에게는 상사와의 대화라는 벌칙이 더해졌기에 그 누구도 옆에 서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한 사람만은 모두를 대신해서 희생하는 제물, 즉 상사의 말상대가 되어야만 했지요. 그 결과 산책 행렬은 항상 선두에 선 두 사람과, 그 뒤에 멀찍이서 뒤따르는 다수라는 기이한 대형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점심시간, 밥을 다 먹고 나자 직원들이 함께 산책을 가자고 제안했을 때 곰과장은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어쩌면 정말로 나와 함께 산책을 가고 싶은 게 아닐까?' 물론 개 풀 뜯어먹는 소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참으로 매력적인 발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곰과장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산책로를 걸었고, 그러는 동안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산책 행렬이 선두에 선 두 사람과 그 뒤에 멀찍이서 뒤따르는 다수로 구분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곰과장은 선두에 선 두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로 곰과장은 생각합니다. 상사는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존재라고, 그러니 중간관리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상사는 필연적으로 싫고 짜증나는 존재입니다. 직원들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중간관리자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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