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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Nov 27. 2023

서로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07

대부분의 조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더군다나 공무원 조직이라면 이합집산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한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조직인지, 어느 직위에 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2년에서 3년 정도 근무한 후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잦은 인사이동이 공무원 조직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힙니다. 거기에 대해서 상세하게 늘어놓는 건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여하튼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가 바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경험을 이미 해 보았습니다. 바로 학교에서 말입니다. 일 년마다 이동이 일어나지요. 그럴 때마다 기존의 만남은 헤어짐이 되고 대신 새로운 만남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요. 자신과 맞는 사람보다 맞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 년간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온 가족 간에도 다툼이 일어나는 게 일상일진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나 대립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겠죠. 그렇기에 결론은 이렇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당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수없이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십중팔구 크고 작은 충돌을 겪게 될 겁니다. 




혹자는 애들도 아닌 어른들끼리 왜 싸우냐고 반문합니다. 그건 잘못된 지적입니다. 오히려 어른이기 때문에 더 자주 싸웁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머리가 굳어버린 지 오래라 자신이 가진 옳고 그름의 기준을 쉬이 바꾸려 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모든 조직에서는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어느 부서든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누군가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 같은 겁니다. 


하지만 중간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뛸 상황입니다. 직원들끼리 부딪히면 부서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꼬라박힙니다. 직원들이 직원들의 눈치를 보게 되지요. 설령 사이가 안 좋더라도 일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사이가 안 좋으면 일하는 데 몹시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나는 누구랑 같이 근무 못 한다, 나는 누구와는 얼굴을 마주볼 수 없다, 심지어는 나는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까지 나오는 판국입니다. 


물론 자기합리화를 하자면 그게 중간관리자의 잘못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그러한 충돌은 자연재해처럼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높으신 양반의 목을 치거나 혹은 강물에다 집어던졌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에 책임을 지라는 뜻이지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천만다행으로 목이 날아갈 일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조직 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건 결국 조직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책임이 됩니다. 잘못이 없더라도, 책임은 있습니다.




곰과장에게도 여러 경험이 있습니다. 예컨대 직원 둘이 대판 싸운 적이 있습니다. 세상사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 사건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이 일과 저 일이 우연찮게 꼬여서 일어난 사건이었지요. 하지만 여파는 엄청났습니다. 누군가는 못해먹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때려치우겠다고 했습니다. 중간관리자로서 곰과장은 무척이나 비참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기가 먼저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일단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려 시도해 봤지만 전혀 소용없었습니다. 둘 사이에 파인 골은 생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결국 그 일은 대충 수습이 되었습니다. 수습되었다기보다는 억지로 봉합시켰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인사철이 다가오는 동안 곰과장은 두 사람 사이에서 항상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인사에서 한 사람이 부서를 떠났고, 곰과장은 그때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또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팀의 직원들이 어느 날 눈물을 흘리며 부서장에게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팀장의 괴롭힘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버틸 수가 없다고, 그러니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말입니다. 한편 그 팀장 또한 눈물을 흘리며 부서장에게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자기가 팀원들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팀원들이 어떤 식으로 뒤에서 자신을 욕하고 비난하면서 뒤통수를 쳤는지를 구구절절 말했습니다. 


결국 그 일은 팀장과 직원들이 죄다 부서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일에서 곰과장은 조그만 교훈 하나를 얻었습니다. 안 맞는 건 안 맞는 거다. 어쩔 수 없는 거다, 라고요. 




위에서 언급한 여러 사람들이 유별나게 특이하거나 희한한 건 아니었습니다. 아.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지요. 제각기 친한 사람도 몇몇 있고 안 친한 사람도 몇몇 있는,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길거리를 걸어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명쯤은 마주칠 법한 범상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하루에 열 시간씩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되지요. 이 사람은 나와는 다르구나, 라고요.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던 사람에게서 나와 도저히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마냥 좋게 보았던 사람이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거기서에 균열이 생기고 충돌이 발생합니다. 필연적으로요. 


그래서 중간관리자 곰과장은 오늘도 생각합니다. 서로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원 조직이란 얼마나 다행인가요? 누군가와 맞지 않으면 일 년에 두 차례 있는 인사이동을 통해 언제든 떠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떠나가서 도착한 곳이 천국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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