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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Nov 29. 2023

중간관리자의 영원한 숙제 - 인사(1)

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08

이 세상 모든 조직의 핵심은 인사와 예산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기에 인사가 중요하고, 돈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기에 예산이 중요합니다.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사람과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인사와 예산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사안에 불과합니다. 인사와 예산이야말로 조직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공무원 조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일반적인 조직보다 더 그런 성향이 강합니다. 왜냐면 본질적으로 공무원의 업무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기업은 몇 명의 인력과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서 결과적으로 얼마를 벌어들였다는 식으로 성과를 계량화하지만, 공무원은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의 인력과 예산 업무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까다로우며 중간관리자는 반드시 인사와 예산을 잘 처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인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부서나 팀 단위에서 실무적인 의미의 인사란, 어떤 사람을 영입하고 어떤 사람을 내보낼 것인지, 그리고 업무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의 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기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중간관리자는 훌륭한 직원들을 데려오려 애쓰고, 직원들에게 업무를 공정하게 분배하려 노력합니다. 


곰과장은 어려서부터 삼국지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지력과 정치력이 최고인 문관들을 모아 내정을 이끌었습니다. 또 통솔력과 무력이 최상급인 장수들을 모아서 적의 영토를 공격했지요. 상대에 비해 압도적인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쟁을 벌일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승리했습니다. 뛰어난 인재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과제였습니다. 


중간관리자로서 곰과장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훌륭한 직원이 있어야 합니다. 헌데 게임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수치화되어 있어 누가 뛰어난 인물이고 누가 범상한 인물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얼마나 충성심이 강한지, 의리가 강한지, 현명한지, 용맹한지조차도 숫자를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게임이 아닙니다. 곰과장 역시 전지전능한 게임 속 군주가 아닙니다. 어떤 직원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특기가 무엇이고 장점이 무엇인지, 또 아쉬운 점과 단점이 무엇인지는 무척이나 알기 어렵습니다. 또 뛰어난 직원이 있다 한들 마음대로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칼을 들고 옆 부서에 쳐들어가서 적장의 목을 치고 그 부하들을 영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게임 속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중간관리자에게는, 특히 조직 구성의 즉각적인 변화가 어렵고 법령에 의해 규율되는 업무가 많은 공무원 조직의 중간관리자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직원을 영입하는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지금 있는 인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직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그걸 명확한 문서로 남겨두는 행위를 공무원들은 '업무분장'이라고 부릅니다. 분배의 기준으로 대개 해당 업무의 난이도, 실수했을 때 짊어져야 하는 리스크, 업무 자체의 중요성 등을 고려하지요. 대체로 일을 잘 하거나 경력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렵고 중요한 일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때로는 군대처럼 막내에게 어려운 일을 죄다 미루어 버리는 사례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중간관리자라면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건 조직 전체는 물론이거니와 중간관리자 자신에게도 피해가 오는 일입니다. 조직의 목표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고, 중간관리자의 목표는 본인의 영역 안에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간관리자가 종종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바로 일 잘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일을 시키는 겁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공평한 업무 분배란 무엇일까요? 모든 직원에게 수학적으로 동등한 업무량을 나눠주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직원의 능력에 따라 업무량을 조절해주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요? 똑같은 질문을 표현만 살짝 바꿔서 반복해 보지요. 일 잘하는 직원은 오전에 일을 마친 후 오후에는 놀도록 하고 일 못하는 직원은 밤 열한 시까지 야근하도록 하는 게 공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일 잘하는 직원이든 일 못하는 직원이든 간에 오후 여섯 시에 일을 끝내고 퇴근할 수 있도록 업무량을 조절해주는 게 공정한 것일까요?


정답이요? 당연히 없습니다. 세상에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는 질문 따위는 많지 않아요. 뭐가 옳은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다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래도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직원일수록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어려운' 일을 '많이'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그런 직원에게 맡겨야 일을 빨리, 제대로 처리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맡은 직원에게는 반대급부로 근평이 주어진다는 것은 지난 글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잘하는 직원이더라도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업무량이 늘어나면 번아웃이 옵니다.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처리가 늦어집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이나 마음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조차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간관리자는 직원들의 업무 처리속도와 결과물, 표정과 행동 등을 항상 주시하면서 업무량을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일을 못하는 직원이 있어도 그 직원에게 어느 정도는 일을 주어야 합니다. 맡기는 일마다 복장이 터질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그럴지라도 최소한의 업무는 맡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공무원 조직은 업무성과와는 무관하게 호봉에 따라 월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월급 꼬박꼬박 받으면서 일은 하나도 안 하고, 또다른 누구는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죽어라 일한다면,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업무 분장은 중간관리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한편 업무분장에 있어서는 직원 각자가 지닌 특성이나 개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예컨대 숫자가 틀리면 안 되는 예산이나 회계 업무에는 아무래도 꼼꼼하고 근면한 직원이 어울립니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업무에는 저돌적이고 긍정적인 직원이 좋습니다. 물론 그 반대급부도 함께 고려해야겠지요. 꼼꼼하고 근면하다는 건 곧 일 처리가 느리고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저돌적이고 긍정적이라는 건 곧 실수가 잦고 세밀한 부분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곰과장은 성향이 다른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서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의 장점으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거지요. 물론 사람의 일이라는 게 항상 마음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단점으로 서로의 장점을 억누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직원들은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가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사람은 내 머릿속의 논리대로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곰과장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습니다. 직원들에게 보고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중에 그 직원과는 반대되는 쪽으로 생각을 해 보는 겁니다. 예컨대 직원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일부러 꼼꼼하게 법령상의 기준을 따져 보고, 반대로 직원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면 일부러 과감하게 추진하는 식입니다. 


물론 이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직원의 입장에서는 상사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간섭하면서 어깃장을 놓는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곰과장 역시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옳을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하고 싶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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