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Dec 19. 2023

그래도 좋은 상사가 되려면

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10

곰과장이 과거 주무관이었던 시절의 일입니다. 


한때 같이 근무했던 A부서장은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직원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일찍 퇴근하기 힘든 부서였으니까요. 문제는 저녁을 먹으러 가는 가게가 항상 삼겹살집이었고, 항상 삼겹살을 구웠고, 항상 반주를 곁들였다는 점입니다. 일곱 시 반에 식사를 하러 나가면 대체로 아홉 시 가량에야 식사가 끝났습니다. A과장과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은 얼굴이 불콰해져 있기 일쑤였죠. 마침내 식사가 끝나면 A과장은 일어서면서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아까 지시한 거 내일 아침에 내가 볼 수 있도록 책상에 올려놔." 그리고 A과장이 집으로 떠나고 나면, 남은 직원들은 툴툴거리면서 다시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그 지시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른 부서에서 같이 근무했던 또다른 부서장이 있었습니다. 그 B과장은 항상 여섯 시가 되자마자 홀로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대체로 일주일에 다섯 번쯤은 술 약속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B과장은 종종 말하곤 했습니다. "과장은 원래 밤에 일하는 거야. 밤에 술 먹으면서 정보를 얻고 다음날에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게 과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지." 그게 진담이었는지 혹은 잦은 술자리에 대한 변명거리였는지를 곰과장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B과장은 적어도 본인의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면 B과장은 술이 덜 깬 모습으로 출근해서는 지난 밤에 들었던 조직 내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해 주곤 했습니다.  




적고 나니 마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상사처럼 느껴집니다만, 놀랍게도 일말의 거짓도 없는 사실 그대로의 경험입니다. 곰과장은 저런 상사들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될지를 익힐 수 있었지요.


세상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우리 때와 다르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습니다. 괴상한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MZ세대라느니, 알파 세대라느니 하면서 희한한 명칭들을 주워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세대차이는 이천 년 전에도 있었고, 마찬가지로 이천 년 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겁니다. 그러니 젊은 실무 직원들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 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필요는 없습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그걸 사실 자체로 받아들이면 될 일입니다. 그보다 진짜 중요한 건 이겁니다. 


'내가 실무자 때 싫어했던 상사의 행동을 지금의 내가 그대로 따라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어쩌면 많을지도 모릅니다. 서는 자리가 바뀌면 바라보는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던가요. 제가 실무자였던 시절에 이해할 수 없었던 중간관리자의 행동이, 막상 중간관리자의 위치에 올라오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A과장의 행동도 일부분은 납득이 됩니다. 본인이 원해서 일곱 시 반이나 되어서야 저녁을 먹으러 간 건 아니었겠죠. 그 시간까지 국장이나 실장이 퇴근을 하지 않으니까 본인도 배고픈 걸 참아 가며 늦게까지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럴지라도 굳이 야근해야 할 직원들에게 술을 먹일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것도 매번. 


그래서인지 저는 A과장에 대해 딱히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반면 B과장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이 꽤나 많지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제게 가르침을 주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A과장은 본받지 말아야 할 타산지석으로서, B과장은 본받을 만 한 귀감으로 말입니다. 


이전 09화 중간관리자의 영원한 숙제 - 인사(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