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11
심리학자 스키너는 이른바 행동주의 심리학을 통해 과학적 심리학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특히 그는 강화(reinforcement)와 처벌(punishment)로 대표되는 도구적 조건 형성을 주창했는데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어떠한 행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은 강화하고, 부정적인 반응은 처벌함으로써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원리입니다.
사실 이러한 개념이 새로운 건 절대 아닙니다. 신상필벌이라는 말은 수천 년 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스키너는 그 사실을 자연과학적 방식으로 증명했습니다.
굳이 스키너를 언급한 건, 중간관리자로서 직원들을 제어하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강화와 처벌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직원이 우수한 성과를 냈다면 그에 따른 긍정적 피드백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직원이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요. 반면 어떤 직원이 부족한 성과를 냈다면 그에 따른 부정적 피드백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처벌이라는 게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스키너는 그 유명한 '스키너 상자'에 실험동물을 집어넣은 후 부정적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그러면 큰 일 나죠. 곰과장이 자기 부서 직원을 상자에 집어넣고 전기충격을 가했다가는 당장 체포되어서 감옥에 처넣어질 겁니다. 하지만 스키너가 비도덕적이라는, 혹은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대신 그는 증명했습니다. '처벌'보다는 '강화'가 효과적이며, 특히 '처벌'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곰과장이 근무하던 곳에는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재판을 집어던지면서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 악명 높은 간부가 있었습니다. 효과가 있었을까요? 스키너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효과는 있습니다. 당장 보고서의 질을 끌어올릴 수는 있다는 뜻입니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경기에 패한 선수들에게 단체 폭행을 가하던 악습 또한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반면 강화는 처벌보다 더 효과적이며 더 장기적인 효과를 냅니다. 프로 야구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연봉이 인상되고, 그 선수는 다음년도의 연봉 인상을 위해 더 열심히 하는 식으로 선순환 효과가 생겨납니다. 이게 바로 강화의 원리입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성과에 대한 긍정적 자극이 있어야 직원의 역량이 올라가고 성과도 높아집니다.
문제는 역시 공무원 조직의 특수성입니다. 줄 수 있는 긍정적 자극이 무척 한정되어 있다는 점 말입니다. 반복해서 언급했다시피 공무원에게 줄 수 있는 지속적인 보상은 오직 승진뿐입니다. 하지만 승진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무척이나 제한되어 있기에 우수한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이라는 대가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빠지게 됩니다. 열심히 해도 승진하지 못할 거면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는 거지요.
이런 상황에서 중간관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건 곰과장의 깊은 고민거리입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답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물론 중간관리자로서 곰과장은 부서 단위에서 좋은 성과를 냄으로써 부서원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승진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러면 부서의 사기는 확실하게 올라가겠지요. 하지만 승진은 제로섬 게임이고, 조직 전체에서 보면 곰과장의 부서원 한 사람에게 승진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때 어딘가 다른 부서의 누군가는 승진 누락이라는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는 곰과장의 노력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한정되어 있지 않은 보상을 주어야 할까요? 슬프게도 대부분의 조직에서 한정되지 않은 보상은 딱 한 부류밖에 없습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씀'이나 '마음이 담긴 칭찬' 따위 말입니다. 이러한 보상이 대체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회의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표창이라든지 포상, 해외 연수 기회라든지 우수팀 선정 따위의 보상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승진에 비하면 거의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충분한 '강화'의 요인이 못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곰과장은 이런 것들이나마 직원들에게 챙겨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외에 다른 보상을 줄 능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냉엄한 현실이죠.
물론 행동주의 심리학이 항상 옳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흘러간 과거의 조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사람은 기계나 도구가 아니기에 A를 입력한다고 항상 A라는 답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내가 강화라고 생각한 것이 상대에게는 처벌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격려가 상대에게는 추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허나 그럴지라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건 분명 중간관리자에 도움이 됩니다. 조직이란 개개인의 집합체이고, 애초에 심리학이란 인간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발달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하고서 어찌 조직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곰과장은 심리학을 뒤적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