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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07. 2019

조조의 세 아들 (5)

더 깊게 들여다보는 삼국지 05

  언릉후(鄢陵侯) 조창과 임치후(臨淄侯) 조식은 원칙대로라면 자신이 봉해진 봉국에 가 있어야 했습니다. 물론 자식들을 애지중지했던 조조는 원칙을 무시하고 두 아들을 자기 곁에 두었지요. 당대의 최고 권력자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감히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조비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두 동생을 봉지로 보내버립니다. 중앙 정계를 떠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조창의 군권까지 빼앗는 멋진 정치적 한 수였습니다. 본래 법도에 따르면 봉지로 떠난 제후들은 천자의 허락이 없이는 그곳을 떠날 수 없었거든요. 너 당분간 시골에 처박혀 있어라.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게 조식이 멀리 사라지자 조비는 내내 눈엣가시였던 정의와 정이 형제를 잡아들여 죽입니다. 그 둘만 죽인 게 아니라 정씨 집안의 남자들을 죄다 멸족시켜 버렸죠. 그래도 명색이 아버지의 친구였던 정충의 집안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때 처음에는 자살을 강요했지만 정의는 친분이 있었던 하후상에게 찾아가 도와달라고 애원합니다. 하후상은 조비에게 가 울면서 정의를 살려달라고 했죠. 그러나 조비는 친족이자 심복이며 친구인 하후상의 부탁을 거절하고 정씨 형제를 잡아 죽입니다. 이제 조식에게 남은 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220년 겨울. 조비는 헌제로부터 황위를 선양 받음으로써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의 황제가 됩니다. 


   221년. 조비의 은밀한 지시를 받은 관리가 상주합니다. “조식이 술에 취해 오만방자하게 굴면서 천자의 사자를 협박했습니다. 엄히 처벌해야 합니다.” 이때 조식은 두건을 벗고 작두를 짊어진 채 맨발로 조비에게 죄를 빌어야 했습니다. 물론 조비에게 동생을 용서할 생각 따윈 털끝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태후인 변씨가 내 자식들끼리 이게 무슨 짓이냐고 울면서 애원하지요. “네가 네 동생을 죽인다면 나도 차라리 목숨을 끊고 말겠다!” 결국 조비는 짐짓 관대한 척 조식의 죽을죄를 용서해주겠다고 합니다. 대신 그의 봉지를 옮기고 직위를 낮춥니다. 


   세설신어에는 이때 그가 지었다는 소위 칠보시(七步詩)가 언급됩니다. 일곱 걸음을 떼어놓는 사이에 시 한 수를 완성했다는 거죠. 하지만 세설신어는 역사서가 아닌 지인소설(志人小說)로, 말하자면 가십모음집 같은 물건이라 사료로서의 신빙성은 꽤 낮습니다. 칠보시 자체도 위작이라는 설이 우세하지요.


   222년. 조비는 여러 아우들을 왕으로 봉합니다. 조창은 임성왕(任城王), 조식은 견성왕(鄄城王)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반쯤 연금 상태에 가까운 인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223년. 조비는 갑작스레 여러 아우들을 수도 허창으로 불러들입니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형제들이 몇 년 만에 만나 회포를 풀게 되었죠. 그렇게 다들 조비를 알현하였고, 조창이 갑작스레 죽습니다. 고작 삼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는데 말입니다. 어째서 그토록 갑작스레 죽었을까요. 그것도 하필이면 조비의 부름을 받고 허창으로 와서 말입니다. 


   역시 세설신어에 따르면 조비가 조창에게 독을 넣은 대추를 주었다고 합니다. 태후 변씨가 중독된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지만 조비가 두레박 끈을 잘라버린 탓에 결국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는 뒷이야기도 있지요. 이게 비록 사실은 아닐지라도 당시에 조비가 동생을 독살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 정도는 되겠습니다. 


   조창이 갑작스레 죽은 후 여러 왕들이 번국으로 되돌아가는데 조식은 동생인 백마왕 조표와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동행하며 이야기라도 나누려 했죠. 그러나 조비의 명을 받은 관리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조식은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조비의 동생들은 말이 좋아 왕이지, 실제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는 동생과 이별하며 기나긴 시를 한 수 남기는데 저는 그중 특히 이 구절을 좋아합니다.


가을 바람이 서늘히 불어오니, (秋風發微涼)
추운 매미가 옆에서 울어댄다. (寒蟬鳴我側)
들판은 어찌 이토록 쓸쓸한가. (原野何蕭條)
밝은 해 홀연히 서쪽으로 숨네. (白日忽西匿)
 


   그러나 시성(詩聖)으로까지 불렸던 그의 시는 이제 조비를 칭송하며 아첨하는 데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건 오직 살아남기 위함이었습니다. 조식이 조비에게 바친 시를 보면 얼마나 안쓰러운지 실로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황상을 받들 때를 기다리자니 마치 갈증이 나고 굶주리는 것만 같다.’ ‘천자의 광휘가 비천한 내게 비추었으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영원히 그리워하니.’ 이런 식이었지요. 


   226년. 조비는 제위에 오른 지 5년 만에 사망합니다. 고작 마흔 살에 불과한 나이였죠. 어린 아들 조예가 제위를 계승합니다. 그러자 조식은 다시 희망을 품기 시작합니다. 나를 그토록 미워하던 형이 죽었다. 어쩌면 이제 다시 수도로 돌아가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기에 그는 몇 차례나 상소를 올리고 또 여러 가지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제발 나를 써 달라는 몸부림이었지요. 


   그러나 조예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27년, 228년, 229년에 세 번이나 연달아 봉지를 옮김으로써 조식이 그 어떤 세력도 구축하지 못하도록 예방책을 취하지요. 


   232년. 조식은 마침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수도 방문과 황제 알현을 허락받습니다. 그는 조카인 황제를 설득하여 자신을 쓰도록 하려 했지요. 그러나 조예는 끝내 거절합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쓸쓸히 봉국으로 돌아온 조식은 근심에 빠져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향년 41세. 세 형제 중 가장 오래 살았지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조식의 인생 후반부는 오직 욕됨과 한탄으로 가득 찬 불우한 삶이었습니다. 


   다만 조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삼촌이 안쓰러웠던 모양인지 이러한 명을 내렸습니다.

  “진사왕 조식은 비록 예전에 잘못이 있었지만 이후 행동을 신중히 하며 그 잘못을 고친 바 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니 실로 본받을 만한 일이다. (조비의 제위 시절인) 황초 연간에 그 죄상을 탄핵한 상주문과 관련된 문건을 모두 회수하여 폐기하라. 그리고 그가 지은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궁궐에 간수하도록 하라.” [위서 진사왕식전]


   그렇게 조식은 죽었지만 그의 글은 살아남았습니다. 오백여년 후,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가 등장하기 전까지 조식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았으니 그것이 어쩌면 조식이 그의 형 조비를 상대로 거둔 진정한 승리였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게 조조의 세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마치 조조라는 인간을 셋으로 나눈 것처럼 저마다 아버지를 무척이나 닮았으면서도 서로 닮지는 않았던 세 형제. 결국 당대의 승자는 조비였지만 그는 결국 별다른 업적을 세우지 못한 채 단지 조조의 아들로만 역사에 기록되었을 뿐입니다. 심지어 위나라의 초대 황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인식은 오히려 조조를 창업주로 보고 있을 정도지요. 시성으로 칭송받던 조식조차도 이백과 두보가 등장한 이후로는 역사의 저편으로 천천히 잊혀 갔습니다. 하물며 세 형제 중 가장 뒤처져 있었던 조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삼국지연의라는 희대의 소설이 아니었던들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의 학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겠지요.


   반면 아버지 조조는 죽기 전까지 천하를 지배하였고 죽은 후에도 거의 이천 년이나 되는 장구한 세월 동안 그 이름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망탁조의라 하는 역적의 대명사이자 난세의 간웅이라는 오명(汚名)으로 말입니다. 근래 들어 조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에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조조가 여러 면에서 걸물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조조의 세 아들은 끝내 그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하고 차례로 잊혀 갔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궁금해하곤 합니다. 과연 조조는 저세상에서 아들들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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