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게 들여다보는 삼국지 01
그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호색한으로도 이름 높았던 조조에게는 무려 스무 명이 넘는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첩을 많이 두었기 때문이지요. 그중 본처, 흔히 말하는 정실부인은 원래 정씨였습니다. 하지만 정씨는 후사를 두지 못했습니다. 첫째아들 조앙과 둘째아들 조삭은 모두 첩 유씨의 소생입니다. 그런데 유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정씨는 그 소생들을 자신의 자식으로 들입니다. 즉 조앙은 본래 서자(庶子)였지만 본처의 아들로 인정되어 적자(嫡子)가 된 셈입니다. 훗날 정의와 결혼하려다 조비의 방해로 결국 하후무에게 시집가게 된 청하공주도 역시 유씨의 소생입니다. 비록 자신이 직접 낳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정씨는 조앙을 매우 사랑했고 조앙 역시 정씨를 어머니로 모셨다는군요.
그렇게 적장자가 된 조앙은 자타공인 조조의 후계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조조는 장남을 아껴 전장에도 자주 데리고 다녔지요. 하지만 완에서 장수가 항복해 왔을 때, 조조는 과부였던 장수의 숙모에게 눈독을 들여 자신의 침상으로 끌어들입니다. 여기에 굴욕감을 느낀 장수는 조조를 배신하고 밤에 기습을 가하지요. 조조는 화살까지 맞았지만 마침 조앙이 그에게 자신의 말을 주어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막상 조앙은 뒤를 막다가 목숨을 잃습니다. 이때 조카인 조안민과 호위대장 전위도 함께 전사하죠.
남편의 오입질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본처 정씨는 분노와 슬픔과 원망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다 결국 친정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조조는 후안무치하게도 오히려 자기가 화를 냈지만 나중에는 아내를 데리러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해도 정씨는 먼 산만 바라볼 뿐 조조를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지요.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조조이지만 이 일은 그에게도 한스러움으로 남았던 모양입니다. 수십 년 후, 조조가 죽을 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지요.
“내 지난 행적을 돌이켜 보면 마음에 거리끼는 바가 전혀 없다. 다만 하나만은 후회가 되니, 만일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있다면 조앙이 내게 ‘어머님은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을 것인데 내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 그걸 아는 인간이 과부 탐내다가 그 꼴을 당하나??
여하튼 결국 정씨와 갈라서게 되자 조조는 다시 처를 두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차남인 조삭도 일찍 요절한 상황. 그는 무수히 많았던 첩 중 본래 가기(歌妓) 출신이었던 변씨를 본처로 올립니다. 아마도 변씨의 아들들이 가장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때 이미 아들을 넷이나 낳았거든요. 그들의 이름은 조비, 조창, 조식, 조웅입니다. (조웅은 사실 생몰연도가 불명확해서 나중에 태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자. 이렇게 되자 본디 서자였던 변씨 소생의 아들들은 갑작스럽게 적자가 됩니다. 조조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주어진 것이죠. 이후 조조가 승상이 되고, 위공(魏公)이 되고, 마침내 위왕(魏王)이 되면서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자 그의 후계자 자리 또한 무척이나 엄청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절하여 일찍 세상을 떠난 조웅을 제외한 세 아들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런데 조비와 조창, 조식 세 사람은 같은 부모를 두었음에도 제각기 꽤나 다른 성향이었습니다. 아버지인 조조라는 인물이 워낙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과시하던 사람인데 자식들이 그중 한두 가지씩을 이어받았다고나 할까요.
조식. 조조가 사랑해마지않던 다섯째 아들 조식은 성품이 발랄하였고 문재(文才)가 엄청났습니다. 그냥 글 좀 잘 쓴다는 수준이 아니라 당대의 문필가였던 아버지마저 초월하여, 오백여 년 후 이백과 두보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죠. 고작 열세 살에 요절한 아들 조충을 제외하면 조식은 조조가 가장 사랑한 아들이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부모는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요. 조식이 바로 그런 사례였습니다. 그런데 예술가 기질이 넘쳐흘러서 그랬을까요. 조식은 동시에 지독한 술주정뱅이였습니다. 술 퍼마시고 사고를 친 게 한두 번도 아니었고, 개중에는 거의 반역죄에 버금가는 행동도 있었습니다. 그건 추후 다시 설명드릴게요.
조창. 조조의 아들 중에서도 특이하게 문(文)보다 무(武)에 많은 관심을 두었던 넷째 아들입니다. 물론 조조는 당대에도 손꼽히는 군사지휘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창은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타고난 무인(武人)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활 쏘고 수레 몰기를 즐겼고, 맨손으로 맹수들을 때려잡았습니다. 어느 날 조조가 자식들을 불러놓고 넌 커서 뭐가 될 거냐고 하니 조창은 대뜸 장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조조가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니 "대장부라면 위청이나 곽거병처럼 십만 기병을 이끌고 흉노족을 때려잡아 공을 세워야지 무슨 얼어 죽을 책입니까?"라고 대꾸하기도 했죠. 조조는 그런 조창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랑했던 걸로 보입니다. 자신이 정벌을 떠날 때마다 조창을 데려 다니면서 군사 경험을 쌓도록 해 주었고, 수염 누런 아이(黃鬚兒)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아꼈지요.
조비. 셋째였지만 두 형이 잇따라 사망한 이후로 적장자가 되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장자가 가지는 무게감과 권위는 워낙에 대단한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비는 서른이 넘도록 조조의 후계자로 공인받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조비가 조조의 마음에 안 들었거나, 혹은 다른 아들이 조조의 마음에 더 들었거나.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글재주를 물려받았지만 하필이면 조식이라는 존재가 있었던 탓에 문(文)에 있어서도 최고가 되지 못했고, 조창이 있었기에 무(武)에 있어서도 최고가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 성격은 아버지를 그야말로 쏙 빼닮았지요. 고작 열여덟 살에 원소의 둘째 아들 원희의 아내를 빼앗는 호색함이나, 사냥과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성품 등이 딱 그렇습니다.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빼닮은 적장자가 아버지의 눈에는 어찌 비쳤을까요.
이 세 명이 조조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조창은 한 수도 아니고 두세 수쯤 접어줘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적장자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형과 능력이 뛰어난 동생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뒤처졌고, 수도에 있는 대신 외지(外地)로 돌아야 했던 무장이었기에 자신을 뒷받침해 줄 세력을 모으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조비 대 조식의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조조는 후계자를 확정하지 않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합니다. 물론 그건 조비보다 조식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조조는 그런 생각을 남에게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드러내 놓고 조식을 총애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식을 아예 후계자로 지정하지 못한 건 적장자가 대를 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깨뜨리는 게 부담스러웠던 이유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보다 원소와 유표의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겠지요. 원소가 후계자를 확실히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그 세 아들은 저희들끼리 싸우다 고작 몇 년 만에 아버지의 기업을 모두 말아먹었고, 본래 큰아들이 아니었음에도 후계자로 지정된 유표의 자식 유종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냉큼 조조에게 형주를 가져다 바쳐버렸습니다. 자신이 죽은 후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조는 한숨이 나왔을 겁니다. 게다가 벼슬아치들 대다수는 당연히 원칙과 법도에 따라 적장자인 조비를 지지했지요.
결국 조조는 결정을 미룹니다. 대신 두 아들에게 각각 재주가 뛰어난 인재를 한 명씩 붙여주지요. 둘 다 명문가 출신으로 재능이 뛰어난 인재라 할 만한 자들이었습니다. 마침 나이 차이도 얼마 되지 않았지요.
조비에게 붙여준 자의 이름은 사마의. 조조가 몇 번이나 거듭하여 초빙하였고 항상 자신의 곁에 두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조조는 사마의가 조비와 교제하도록 주선해 주기까지 합니다. 반면 조식에게 간 인재는 조조가 직접 안배해 준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묵인이 없었더라면 그가 노골적으로 조식의 오른팔 역할을 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의 이름은 양수였습니다. (참고 : https://brunch.co.kr/@gorgom/2 )
이렇게 각자 오른팔을 얻게 된 조비와 조식은 조조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오랫동안 치열한 승부를 겨루게 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