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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유람선은 한 시간에 삼천 원

사진 한 장 짜리 튀르키예 여행 (여덟째 날)

by 글곰

여행의 마지막 날. 비행기 시간 관계상 오늘은 체크아웃 후 밤 열한 시까지 버텨야 한다. 그런 관계로 평소와는 달리 아침에 잘 수 있을 만큼 늦잠을 자고 있는 한껏 게으름을 부리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추어 길을 나섰다. 짐은 호텔에 맡기고 마지막 날을 렛츠고.


지난 사흘 동안 어지간한 관광지는 다 돌아본 탓에 오늘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곳 위주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게 또 좋았다.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곳이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버스를 타고 베벡으로 가서 우중충한 바닷가 산책을 즐기고, 옛 요새인 루멜리 히사르에 가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일부러 한국에서 안 파는 괴상한 메뉴를 시켜서 마시고, 오르타쿄이로 가서 보스포루스 대교를 보면서 쿰피르도 먹었다.


큰일이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별 수 없이 탁심 광장으로 향했다. 즉흥적인 선택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알고 보니 튀르키예 최대 국경일인 공화국 수립 기념일이 바로 내일이라는 게 아닌가. 탁심 광장은 온통 튀르키예 국기와 아타튀르크의 사진으로 뒤덮여 있어서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인근의 모스크와 정교회 성당, 그리고 가톨릭 성당까지 세 곳을 섞어찌개로 살펴보고는 카페에서 한참 노닥거리다 마침내 선착장으로 향했다.


내가 정해놓은 마지막 밤 일정은 바로 페리를 타는 것이다. 페리는 말 그대로 대중교통이라 카라쿄이에서 카드쿄이까지 가는 데 편도로 천육백 원, 왕복으로도 삼천 원 남짓이다. 그런데 배는 크고 널찍하게 트인 공간도 있어서 완전히 유람선이나 다름없다.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유람선을 탈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비가 내린 이후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페리는 유독 천천히 움직였다. 덕분에 더 오랫동안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바로 앞자리에 앉은 커플이 삼십 초마다 한 번씩 키스를 하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탓에 눈꼴이 시렸지만, 튀르키예 여행의 마지막 식사로 정해놓은 카라쿄이 선착장 인근 고등어 케밥을 먹으려면 감내해야 할 고통이었다.


이럭저럭 마지막까지 충실하고도 좋은 여행이었다. 아마도 평생 두 번은 없을 것 같은 혼자만의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움과 만족감을 진하게 느낀다. 그럼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 비잔티온, 콘스탄티니예, 그 외 무수한 이름이 붙은 도시여 안녕히.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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