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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Oct 14. 2020

7살 연산력을 키우는 가장 빠른 방법

7살이 2학년까지도 되는

“빛날 광? 그게 뭐야? 20점?
이모 손가락 좀 이쪽에 펴고 있어 봐.
숫자가 너무 많아”


“동물 있으니까 10점?
이건 손가락 없어도 돼.
0만 붙이면 되지. 나도 알아”     

2개가 10점인데 3개가 왜 30점이야?
같은 색이면 30점?

같은 색 다 모으면
다른 사람 점수 가져와?



1970년대 말, 남자 나이 서른이면 노총각이다. 이 노총각이 스물셋 아가씨에게 장가를 가서 너무 좋았는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일단 딸 둘을 낳았다. 둘째 돌 무렵, 과테말라로 떠났다. 거기서 3년을 일하고 다시 인도네시아로 넘어가 2년을 일했다.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와 노총각을 구해준 아내, 자신을 빼닮은 딸들. 이 여자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월급의 95프로를 송금했다.  

 

한국에서 다세대 주택만 전전하던 여자 넷은 남자가 인도네시아로 일터를 옮길 때 2층 양옥집에 입성했다. 남자의 아내는 50대 엄마와 20대 딸로 이룬 1층 세입자를 구했다. 주인집에도 남자가 없으니 남자 없는 세입자를 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1층 엄마는 오전에 나갔다가 오후에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오면 종종 2층 여자 셋이 내려왔다. 미취학 꼬맹이 둘, 50대 할머니, 50대 아줌마가 모였다.


작지만 정갈한 방, 한쪽에 지퍼로 된 부직포 옷장이 있다. 그 옆에 뚱뚱한 흑백 티브이 하나 올려놓은 낡은 문갑이 반들반들 자태를 뽐낸다. 옷장과 문갑을 품은 샛노란 모노륨 바닥은 문갑보다 더 반들반들하다. 이 위에 풀색 군용 담요가 쫙 깔렸다. 담요를 가운데 두고 판이 시작된다. 민화투 시작.


꼬맹이 둘은 한쪽씩 붙어 그림 짝짓기에 여념이 없다. 눈치 없이 “이모, 이 꽃이랑 저 꽃이랑 짝꿍이야?”라고 물을 때면 어른들은 “아야, 그걸 말하면 어쩌냐고!”라고 손을 내저었고 끼어든 벌은 확실했다. 바로 점수 계산.     

 

5살은 무슨 말을 해도 면죄부가 있었는데 7살은 점수 계산을 해야 했다. 계산하기 싫어서 입을 틀어막아도 어느새 말을 하고 있다.


“이게 왜 똥이야? 까맣긴 해도 이건 꽃 모양인데”      


그럼 어김없이 그 판을 계산했다. 손가락으로 모자라 발가락까지 동원해서.      


이모 43점, 할머니 55점이야.
이모가 12원 내야 되니까..
10원 먼저 내고 2원은 써놓을게.    

50대 여자 둘은 일곱 살 말을 잘 들었다. 여기에 우쭐해진 일곱 살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숫자 쓰인 스케치북에 온 마음을 집중했다. 저만 외톨이 되는 느낌이 든 다섯 살이 찡찡대기 시작하면 1층 이모는 얼른 갱지와 볼펜을 5살의 손에 쥐어줬다.


5살은 숫자인지 뭔지 모를 기하학 도형을 그리고, 7살은 이모와 할머니가 서로에게 얼마를 더 줘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어른 둘은 아이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본인들 일을 했다. 일곱 살의 계산을 기다리다 수다로 빠지는 바람에 돈이 오가지 않은 날도 있었지. 그럴 때면 아이는 괜히 동생의 갱지를 뺏어 기어이 동생을 울렸다. 다섯 살이 울기 시작하면 50대 여자 둘은 일곱 살에게 "사모님 화나셨어요? 우리 얼마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면 화 안낼거에요?" 하며 비위를 맞췄다. 돈 계산을 한 일곱 살과 갱지를 되찾은 다섯살에게 다시 평화가 왔다. 




눈높이 수학이라는 열풍이 잠깐 닿았다. 방문판매 사원들이 부득불 집으로 와 테스트를 했다. 7살 아이는 2학년으로 나왔다. 이렇게 나올 때 확 끌어줘야 학교 가서 잘 적응한다고 했다.      


“이제 일곱 살인데 2학년 수준까지 하면 잘했네. 입학도 안 한 애를 왜 벌써 끌어.”     


순진한 건지, 교육철학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2층 어른 여자들의 의견 일치로 홍보사원은 머쓱하게 자리를 떴다. 일곱 살은 피아노 학원 이외에는 마냥 놀았다. 피아노 학원 갔다 와서 꽤나 심각한 얼굴로 화투장을 놓고 덧셈 뺄셈을 열심히 하는 것도 일종의 놀이였다.      


저녁이 됐다. 퇴근한 2층 여자는 후다닥 된장찌개를 끓이고 김과 멸치볶음을 내놨다. 2층 난간에서 허리를 숙이고 소리 지른다. “어머님, 형님, 올라와서 밥 먹어요”      

한 뼘쯤 길어진 해를 뒤로 하고 여자 셋이 2층으로 올라갔다. 땅에 서린 봄의 입김이 반가운 계절, 마당의 돌 틈에서 연한 빛이 올라온다. 1층에 혼자 남은 아이는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모노륨 장판만큼 반질반질한 얼굴이 된다.       


“할머니, 같이 가. 나도 다 했어” 아이는 폴짝 뛰어올라 민들레 홀씨 날리듯 가볍게 2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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