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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대리 Sep 16. 2023

나는 평생 개미허리일 줄 알았네

있을 때 잘하자는 말은 오랜 연인 외 타고난 신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요즘에는 많이 없어진 것 같은데, 예전에는 동네마다 '페르마'라는 수학 학원이 있었다.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집 앞에 있던 페르마에 다녔다. 나름 우리 반은 특목고 대비반이라 중학생 반들 중 유일하게 원장 선생님이 직강을 해주셨는데, 밝은 갈색 단발에 목소리가 하이톤이셨던 원장 선생님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자신보다 우리들의 외모에 더 관심이 많으셨다.


그래서 월수금 4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특목반 수업은 항상 원장님의 우리 외모에 대한 코멘트로 시작되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내 옆자리 짝꿍 소정이를 보고는 '소정아, 넌 어쩜 이렇게 머리가 비단결이니?', 내가 조금 좋아했던 내 뒷자리 정홍이에게는 '정홍이는 오늘도 잘생겼네~', 나를 보고는 '오늘도 저녁 안 먹고 왔구먼, 개미허리씨!'라며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붙여준 닉네임이었다. 사실 그 덕분에(?) 나는 내가 남들보다 허리가 가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미허리,  뱃살이 없는 얇은 허리를 가지면 딱 달라붙는 상의를 입을 때 옷태가 나는 건 사실이다. 생긴 대로 산다고, 그래서인지 꽤 최근까지의 내 옷장 속 상의는 쫀득한 재질의, 입고 나갔다가 밥 한 끼 거나하게 먹고 나면 숨을 쉴 수 없는 티셔츠 밖에 없었다. 대학교 때의 패션은 거의 쫀쫀한 티셔츠에 스키니진, 하이힐, 왼손에는 두꺼운 전공 서적 아니면 노트북, 오른에는 라떼다.


하지만 사람은 못 가진 걸 가지고 싶어 한다고. 나는 얇은 허리로 인해 도드라지는 내 큰 엉덩이와 작은 가슴의 반대 체형인 아유미의 '엉덩이가 작고 이쁜~' 사람과 여자가 봐도 설레는 큰 가슴의 소유자들을 부러워했고, 내 신체적 장점을 더 부각하거나 더 열심히 유지할 생각은 못한 채 철마다 아마존에서 빅토리아 시크릿 밤쉘 브라를 직구하고(2컵 이상은 가슴을 키워주는 마법의 브라), 엉덩이를 작아 보이게 하려고 한 여름에도 꽉 끼는 거들(코르셋보다는 덜 불편한 보정 속옷, 와코루 등의 브랜드가 유명하며 딱 붙는 원피스의 뒤태를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을 불편하게 입고 다니며 내 결점 보완에만 신경을 써왔다.


그래서인지 종종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읽다 보면 사이드 배너에 등장하는 '이거 한 알이면 똥뱃살이 사라져요. 39,800원'같은 광고를 볼 때면 '저런 걸 누가 사냐. 그냥 밥 몇 끼 굶으면 배도 쏙 들어가고 따로 돈도 안 드는 데.'라고 생각하며 광고 차단 버튼을 눌렀던 사람이 20대의 나였다.


하지만 대학생 때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힐을 신은 채 무거운 전공 서적을 들고 학교에 가기까지 당시 거주했던 관악구 산 꼭대기에서터 마을버스 한 번, 일반 버스 한 번, 지하철 두 번에, 마을버스 한 번까지 총 5회의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하루 2만 보 이상  걸었고, 동아리 등 모임 이후엔 클럽에 가거나 노래방에서 방방 뛰며 칼로리를 미친 듯이 버닝 했었다.


그. 러. 나. 20대까지는 분비량이 꾸준히 늘어나는 성장&여성 호르몬, 먹는 것 대비 많이 태워온 칼로리, 유전적 축복이라는 3종 세트가 맞물려 개미허리가 유지된 사회 초년생 때까지의 시간이 정말 우연한 행운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사무직 특성상 외근을 가거나 밥 먹을 때 아니면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환경, 게다가 너무 바쁘면 밥까지 앉은자리에서 햄버거 등으로 대충 때우고 야근 후 택시 타고 집에 가서 바로 곯아떨어지는 날의 반복.. 1만 보는커녕 1천 보만 걸어도 많이 걸었다고 느껴지는 회사원의 하루 속 내 쫀쫀한 상의와 허리 사이 약간의 여유 공간은 어느 순간 볼록 튀어나온 러브핸들로 바뀌어 있었다.


노년의 뱃살 이유 증가 원인을 분석한 한 기사에 따르면 성장 호르몬은 인간의 몸에서 지방을 사지 말단으로 고르게 분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호르몬이 30대부터 10년마다 14.4%씩 감소해 60대에는 20대 대비 절반 수준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성장 호르몬 분비가 줄면 보통 복부 내장에 지방이 몰려 복부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주변 회사원들 중 팔다리는 얇고 유독 배만 볼록한 ET체형이 많은 이유가 계속 같은 식습관, 운동습관을 유지한다 해도 뇌하수체에서 기존보다 성장호르몬이 적게 나오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여자들은 여성호르몬이 30대부터 급격하게 감소하여 50대쯤 시작되는 폐경 이후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여성호르몬의 역할 중 하나인 노폐물 축적 방지가 잘 되지 않아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뱃살도 전반적인 살도 더 많이, 급격하게 찔 수밖에 없다.


개미허리도 종적을 감춰.. 기존의 쫀쫀이 옷을 입으려면 하루종일 숨을 참아야 해.. 허리가 날씬하지 않은 상태에서 밤쉘브라나 거들을 착용해 봤자 전체 밸런스가 맞지 않아 더 이상해 보이니 못 입어.. 이렇게 어느 순간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나는 30대 신체 변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멋진 내 상태를 좀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노력하지 않은 점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이제서라도 깨달았으니 좀 더 나을 40대, 50대의 내 figure를 위해 퇴근 후 지압 훌라후프를 10분이라도 돌리고 자려고 하고, 출근길에 무조건 픽업하던 바닐라 라떼를 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몇 년째 루틴으로 설정해 놓은 행동이나 입맛을 단기간에 바꾸기란 참 어렵긴 한 것 같다.


혹시 당연하게 생각해 온, 아니면 생각조차 안 하고 있던 내 신체가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시간을 들여 찬찬히 그곳을 살펴본 뒤, 하루 10분씩만 신경을 써 보는 게 어떨까. 있을 때 잘하란 말은 30년을 살아보니 오래된 연인에 대한 태도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닌, 앞으로 30년 이상을 나와 함께할 내 몸 곳곳에도 적용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 작가의 한 마디 : 물론 큰 키 같은 신체 조건이 30대에 진입한다고 갑자기 난쟁이 똥자루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좋았던 눈(시력), 건강했던 잇몸(치아), 날씬했던 허리(지방층)  순식간에 그 '좋았던 때'가 언제였는 지도 모르게 '훅 가'기도 하니, 꼭 하루 10분이라도 미리미리 관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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