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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대리 Sep 17. 2023

서른 넘으면 살려고 운동한다던데?

Yes. 운동마저 안 하면 퇴근 후 당신은 그저 시체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근육'은 근세포가 모여 만들어진 결합 조직이자 수축 운동을 통해 개체의 이동과 자세 유지, 체액분비 등을 담당하는 신체기관일 것이다.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새벽 2시까지 공부시키는 학원을 다니며 특목고에 입학하고, 고등학생 때도 집에서 30분 거리 도서관에 주말마다 출근 도장 찍으며 엉덩이 힘으로 신촌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 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나에게 근육은 '공부 근육'이란 말로 더 친숙했다.


대학 입학 후 지도교수님과 한 첫 면담에서 교수님은 내게 '시험 때만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럼 졸업할 때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을 자기 것으로 절대 못 만들어서 나갑니다. 운동할 때 근육이 있어야 더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공부도 꾸준히 해서 공부 근육을 길러둬야 나중에 몇 달에 걸친 프로젝트도 하고, 몇 년이 걸리는 논문 투고도 할 수 있습니다.' 라며 '공부 근육' 개념을 처음 알려주셨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편이었던 나는 공부 근육을 쌓기 위해 펑펑 놀기만 해도 될 대학생임에도 동네 독서실 이용권을 끊어 곧잘 출석체크 했고, 학교에서 수강하는 과목 이외의 내용들을 배우기 위해 컴퓨터, 미술 등 외부 학원도 꾸준히 다녔다.


엥? 이번 챕터의 목적이 '공부'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함이냐고? 천만의 말씀.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지도교수 말씀을 잘 들어온 덕분인지 내 '공부 근육'은 대학 때부터 12년 간 차곡차곡 쌓여 직장인이 되어서도 something new를 배우는 데에 큰 부담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펼치기 위해 더 중요했던 진짜 '근육' 형성에는 너무나 무관심했고, 이게 서른이 되어서야 문제로 터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허리 디스크가 있는 아버지로부터 '허리 관리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나처럼 된다'는 경고를 수없이 받아왔는데, 이런 아버지의 경고가 무색하리만큼 집에 있는 사장님 의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나는 공부할 때 다리는 책상 위, 허리는 의자 바닥에 붙인 자세가 디폴트였기 때문에 중학교 때 이미 척추측만증 (정면에서 보았을 때 일직선인 정상 척추와 달리 S자 형태로 척추가 휜 상태) 진단을 받았었다.  


이에 더해, 나는 언제부턴가 몸의 후면부 허리 쪽의 세로로 길게 뻗은 척추뼈 부분이 마치 사과를 깎아놓고 방치했을 때 갈변하는 것처럼 까맸는데, 샤워를 할 때마다 때를 밀듯 긁어내면 사라졌기에 딱히 이걸 허리 상태와 연관은 짓지 않은 채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출근길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엉덩이와 척추뼈를 잇는 치골부터 발목까지 통증이 느껴지면서이 걷기 어려운 상태에 처했고, 이에 나는 난생처음 월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정형외과에서는 내 상태를 보고는 엑스레이만 찍을 줄 알았더니 드라마에서만 보던 동그란 통에 들어갔다 나오는 CT 검사까지 받으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 방에 불려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지 않고 벽에 붙어있는 촬영 결과만 봐도 내 몸 상태는 처참했다. 겉에서 대충 볼 때는 몰랐는데, 오른쪽 상체가 1~3cm 이상은 왼쪽 상체 대비 높았고(엄청 불균형했다는 거다) 하체도 오른쪽 하체가 왼쪽보다 골반이 앞으로 1cm 이상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사진만으로도 몸이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데, 아침에 내가 느낀 통증이 이제야 나타난 게 이상한 수준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허리가 S자로 꼬이면서 척추와 척추 사이의 통증 완화 장치 몇 개를 터뜨렸는데, 이로 인해 통증 완화를 돕는 용액의 양이 줄어 허리와 골반에 통증을 유발하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은 나쁜 자세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내 코어가 너무 약한 탓에 복부 근육이 척추를 지탱하지 못해 약간의 안 좋은 자세만으로도 남들보다 더 쉽게 척추가 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나는 살아오면서 배와 허리 근육 강화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해본 적이 없으며, 몇 년 전 틱톡에서 유행했던 플랭크 챌린지도 너무 힘들어서 3초 만에 포기한 무코어 인간이다.


갈변하는 내 허리 후면부도 결국 다 이유가 있었는데, 있어야 할 곳에 척추가 없고 자꾸 휘면서 뒤로 밀리니까 피부 쪽으로 튀어나오는 부분이 마찰을 일으키며 착색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그 정도가 약해 착색의 정도가 미미했다면, 지금은 아무리 때를 밀어도 거뭇거뭇한 게 남아있는데 그 정도로 이미 척추가 뒤로 밀려났다는 뜻이란다.


웬만하면 의사 선생님을 찾지 않는 내가 월차를 내고 병원에 들렀다는 말은 정말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이고, 이대로 몸을 방치했다가는 하루 월차가 아닌 1개월 병가를 내야 할 것 같아 나는 고민 없이 일주일 치 약 처방에, 주사치료, 10회 도수치료권을 결제하고 텅장이 된 지갑과 아픈 허리를 이끌고 병원을 떠났다.    


나는 여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왔지만, 허리 통증을 계기로 육체가 망가지면 공부는커녕 밥 먹기, 움직이기.. 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짐을 말 그대로 뼈. 저. 리. 게. 깨달았다. 조그만 것이라도 뭔가를 앞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정말!


이 사단을 계기로 나는 12년간 써오던 사장님 의자와 작별했고, 엄마가 신는 편안한 랜드로바를 샀으며, 다리가 두꺼워보이건 말건 다리를 꼬지 않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도 짝다리로 서지 않으려 차라리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사무실에서도 스탠드 데스크를 배정받았다. 이런 생활 속 습관 성형을 통해 나는 S자 허리가 다시 I자로 돌아오게는 못 하더라도, 트리플 S가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막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습관 성형에 더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건 진짜 근육을 만드는 일인데, 특히 허리에 좋은 운동은 등산하기와 바른 자세로 걷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다. 거창한 등산복이나 기구는 절대 필요 없고, 발과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는 편안한 등산화나 러닝화 하나만 준비해서 집 앞 언덕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지만, 여름엔 새벽 등산을 하면 되고 겨울엔 정오에 등산을 하면 된다. 정 춥거나 비 오는 날에는 헬스장 러닝머신을 12로 incline 설정해서 걸으면 된다. 등산이나 헬스장에 갈 시간이 없다면 퇴근길에 도착지보다 몇 정거장 전에 내려 걷는 량을 조금만 더 확보하면 된다.


등산은커녕 아파트 지하 1층에 있는 헬스장도 다닌 적이 없던 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시작한 등산과 헬스장 방문이 내게 허리 건강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까지 가져다주었다. 전에는 야근 후 퇴근하면 정말 시체가 따로 없을 정도로 침대로 직행했는데, 이제는 야근 후에도 좀 걷다가 집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걷기가 일상이 되었다.


요즘도 아예 허리가 안 아프지는 않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나 생리 기간에는 이따금씩 통증이 있는데 그래도 도수치료를 받거나 당장 병원에 달려가야 할 수준은 아니니 정말 등산과 걷기 운동 덕분에 내 허리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내가 척추측만증도 있었고, 코어 힘도 약했으며, 원체 운동을 안 하던 무코어&무근육 인간이었던 탓에 허리 통증도 더 일찍, 심하게 온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허리 아프다는 소리를 달고 사는 부장님, 옆에서 보면 거북목이 심하게 진행된 과장님, 손에 항상 보호대를 차고 일하시는 차장님.. 우리 모두 허리건 목이건 손목이건 일하며 사는 이상 시기만 다를 뿐 적절한 운동과 근육 강화 없이는 분명 언젠가 큰 통증이나 수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닥치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너무 극명하게 모든 사람들이 결국 신체 통증을 얻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어릴 때, 상대적으로 더 변화의 가능성이 높을 때 간단한 운동, 등산, 습관 성형을 통해 근육을 길러놓는 것이 어떨까.


●  작가의 한 마디 : 초보 등산러라면 3호선 수서역에서 시작해 일원역에서 끝나는 1시간 코스 대모산 등산을 추천합니다. 실제로 제가 자주 가는 코스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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