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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Oct 01. 2019

17. 영주권, 따면 행복한가요?

캐나다가 제2의 고향이 될 수 있을까

노스밴쿠버의 캐필라노강(Capilano River)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유명관광지인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리지보다는 윗쪽의 Capilano Regional Park가 좋다.

    밴쿠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음식이 먹고 싶었다. 리치몬드의 에버딘 스퀘어를 지나다, 몰 안의 한국음식점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원래 혼자 있으면, 다른 테이블의 말 소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크게 들릴 때가 있다.  


    뒷 자리에는 젊은 20대 후반 남성과 50대 남성이 있었다. 대화 내용이, 이제 막 도착한 50대 남성에게 해외 생활 경험이 좀 더 많은 20대 남성이 경험담을 나눠주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재산을 갖고 캐나다에 들어오려고 하는 50대 남자는 "영주권을 따니까 좋겠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젊은 남자는 "달라지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먹고 사는 문제 걱정하는 건 똑같아요"라고 답했다. 중학생이 "좋은 대학 가셔서 너무 부러워요"라고 할 때, 그냥 "아니에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식으로 겸손하게 말하는 것일까. 아직 영주권이 없는 나는 알 수 없는 세계다. 


"달라진 것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시작인데요."


    영주권을 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캐나다에도 투자 이민이 있었지만, 부작용이 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이 사라졌다. 돈으로 영주권을 사는 것이나 다름 없다 보니, 사회적으로 사람들끼리 통합이 안된다던지, 부동산 가격만 올려놓기도 했다. 아직 퀘백주 투자이민이 있지만,  약 10억 원이 필요하다. 이자비용을 5년간 포기하고 퀘백주 정부에 돈을 맡겨놓는 셈이다. 원금은 보장된다고 한다. 그러나 퀘백 주는 프랑스어 문화권이라는 특수성도 있어서 보통 한국의 20~40대가 도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캐나다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지정된 나라다 보니, 프랑스어를 잘할 경우 가산점이 있다. 한 한국인 여성은, 특출나게 높은 영어와 프랑스어 공인점수, 유럽에서의 직장경력을 토대로 전문인력 익스프레스 엔트리(EE)를 통해 영주권을 받고 캐나다로 들어왔다. 


    돈이 없거나 이렇게 '언어천재' 정도 수준의 외국어 능력, 경력이 없는 경우 대부분이 많이 도전하는 경우가 캐나다에서 1년 이상 경력을 쌓은 후, 영주권을 신청한다.  1) 한국에서 대학 이상을 나온 후 2) 영어점수도 어느 정도는 낼 수 있으면서 3) 캐나다에서 1년 이상 일하면서 경력을 만들어 영주권을 신청하게 된다. 물론 반드시 대학을 나올 필요도 없지만, 워낙 '경쟁자'들의 '스펙'과 경쟁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대학 이상, 영어점수도 중상권 이상이어야 도전해볼만 하다. 

    3)번 직장 스폰서를 잡기 전에, 캐나다 컬리지를 졸업 해 '학력 점수' 가산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를 유학원에서는 4) 유학후 이민이라고 한다. '유학 후 이민'은 캐나다 정부에서 쓰는 말은 아니다. 캐나다에서 학교를 마치면 그 사람이 캐나다 사회에서 적응하고 융합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추가 점수를 준다.  캐나다 컬리지 2년 졸업을 하고 이후에 3년 워크퍼밋을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국 사람들이 편의상 통칭하는 표현이다. 당연히 컬리지만 졸업한다고 영주권을 주지는 않는다. 


    3) 직장경험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보니, 한국인 사장님이 있는 요식업, 수리회사, 여행사, 모텔업 등에서 2년 가량 일하면서 '영주권 서포트'를 받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 정부에 세금을 내면서, 이 나라 경제에 계속 보탬이 될 수 있는지를 보기 때문에 이런 증빙서류들을 나중에 영주권 신청할 때, 함께 내야 한다. 


    "영주권 받으셔서 좋겠어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영주권 취득자 답은 똑같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당장 하기 싫은 일을 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좋은데.. 앞으로 먹고 살 문제 해결하는 건 똑같죠." 


 

밴쿠버는 개들의 천국이다. 개와 견주, 그리고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동네 숲'이 많다.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는 걸 좋아한다면, 캐나다 생활이 잘 맞을 확률이 높다.


캐나다 영주권이 있으면, 나는 행복할까


    영주권을 바라는 사람들이 참 많다. 우선, 영주권이 있으면 아이들을 국공립 학교에 중고등학교까지 무료로 보낼 수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국제학생(인터네셔널)으로 유학을 시키면 1년에 최소 1만 5000불(1500만 원)이 든다. 아이 두 명이면 3000만 원이다. 방학도 긴데, 학비도 비싼 셈이다. 그래서 기러기맘으로 온 사람들은 '저 학비를 세이브 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가 컬리지 학생이 되어 '학생비자'를 받거나, 일을 해서 '취업비자'가 있는 경우에도 애들이 공립학교를 다닐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한시적이고, 비자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 또 일하고 싶지 않아도, 매인 몸으로 계속 공부하거나 일해야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다. 


    두 번째, 아들 가진 엄마들 중에는 '군대 안 보내서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처음에 도착했을 때, 어떤 사장님은 "혹시 이혼해서 한국이 싫어서 떠났어요?"라고 물었다. 이것저것 싫어서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나 보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하~'하는 표정으로 "아들이 있구나~ 그래, 나도 우리 아들 군대 안 보낸거, 그거 하나는 부모로써 잘 해줬다고 생각해!"라고 말했다. 군대 문제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5세 아들을 데리고 오면서 "꼭 영주권 따서, 위험한 군대 안 보내려고요"라는 엄마도 있긴 했다. 불편한 진실이다. 


    세 번째, 영주권이 없는데 캐나다에 살려고 하면 신분이 불안하다. 그리고 취업비자 2년짜리로 있다보면, 원하지 않는 직종에 계속 일을 하거나, 노동자로서의 자기 목소리가 작아질 수 밖에 없다. 고용주의 스폰서로 캐나다에 체류하는 처지다보니, 쉬고 싶거나 아파도 '쉬겠다'는 말이 잘 안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영주권을 받아서 일하고 싶을 때 하고,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영주권이 있으면 캐나다 학교 대학원이나 기술전문대학 학비도 캐나다인만큼만 적게 내면 된다.

 

밴쿠버 도심 근처의 한 산책길(트레일).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굵직한 나무들이 무성하다. 영주권과 미래 생각에 마음이 복잡할 때는 그냥 걷고 걸으며 생각해본다.

    영주권을 따는 길이, 계산해보니 쉽지 않았다. 자신의 예상점수가 궁금하면, 캐나다 정부 사이트에서 모의로 계산해볼 수 있다. 학력, 나이, 기혼, 경력 등을 넣어서 예상점수를 뽑을 수 있다. 나이가 어릴 수록, 딸린 식구가 없을수록, 영어점수가 높을수록, 불어점수가 있을수록, 그리고 고용주 스폰서가 있을수록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컷트라인은 450~460점대에 형성되어 있다.  http://www.cic.gc.ca/english/immigrate/skilled/crs-tool.asp

    그래서 이번 기회에 2년 가량의 '고생'을 감수할만큼 내가 캐나다 생활을 좋아하는지 써보았다. 


<캐나다 영주권자가 되고 싶은 이유>

1. 지금 하는 일의 비중은 줄이고, 몸이 자유로워져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 또는 봉사활동이나 영어교육기관에 등록해 좀 더 배우고 싶다.

2. 나이가 들면 배우자와 함께 수영장이 딸린 모텔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 (고민중, 그냥 생각중)

3. 혹시라도 전쟁이 나면, 조부모와 부모 등 일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다. (실제로 이런 목적으로 시민권을 따는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적지 않음)


<캐나다에서 오래 사는 것이 자신 없는 이유>

1. 병원에 가보니, 미국보다는 사회주의적 보험제도가 강한 국가이지만, 너무 느리고 행정이 불편했다. 오래 기다린다. 약 처방을 잘 안해주고, 자연적으로 낫도록 한다. 아이들이 몸이 아플 때 마음이 괴로웠다.

2. 외로웠다. 싸우고 나왔던 친정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웠다. 캐나다에 살다가 부모 장례식도 제대로 못 맞춰가는 이민자들을 많이 보았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고민하게 됐다.

3. 돈을 많이 벌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연금도 적다. 여기서 먹고 살 기술이 뚜렷하지 않다. 영주권을 받아도 시간당 임금에 매여서 살게 될 것 같다.

4. 집값과 렌트비가 매우 비싸다. 전세제도도 없다. 밴쿠버 집 렌트비는 살인적이다. 변두리로 가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생활비가 많이 든다. 얹혀 살 부모님 집도 없다. 

5. 자연은 아름답다. 그러나 여기에 친구가 없다. 외롭다. 술값이 싸니, 사다가 혼자 집에서 마시게 된다. 

6. 나중에 한국 구의원이라도 출마하려면(농담이다;;), 영주권자이면 '한국을 떠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아놓고 왜 한국에 와서 정치인 하냐'고 비난받는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 이외의 다른 나라에 속해 사는 것... 잘 모르겠다.


쓰고 보니, 단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누군가 쉽게 준다면, 다들 덥썩 받으려고 하는 영주권. 그러나 그렇게 욕하고 비난하면서도 사랑하는 내 나라 터전 대한민국을 떠나, 또 다른 곳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험난한 길을 2~3년 겪으면, 나는 그만큼 더 늙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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