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신입사원이던 저. 친한 업계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달리기 대회에 나가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운동을 전혀 안 하던 저질체력인 저에게 말이죠.
생전 처음 어리둥절하게 마라톤 대회에 나갔어요. 가슴에 번호표도 달고 기록칩도 매달고요. 입사동기 친구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서 있는데...
“탕!” 하는 출발소리와 함께 다짜고짜 달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 물결에 휩쓸리듯 생애 첫 10km 달리기가 시작되었지요.
사람들은 마구 나를 앞질러 달려갔어요. 급기야 주변에 사람들이 다 달려가 버리고, 나와 친구는 10km 무리 꼴찌로 달리고 있었죠.. 아무 연습 없는 저질체력이 10km를 달릴 수 있었을까요?
2km를 달린 후부턴 숨넘어갈 듯 주저앉았어요. 친구도 나도 도저히 못하겠다고 아스팔트 위를 뒹굴었죠. 4km쯤 갔을 땐 아예 팀 무리 끝자락이 안보였어요. 앞으로 곧게 뻗은 길, 뒤로 곧게 뻗은 길 사이에 친구와 나 둘 뿐이었죠.
포기할 수도 없는 코스였지요. 5km 반환점을 되돌아 처음 출발한 곳으로 와야 10km가 끝나는 경기였어요. 마라톤 대회에 처음 나가니 몰랐어요 7km쯤 달리자 조금만 뛰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다리는 기계처럼 움직이고 후회가 밀려왔죠.
9km쯤 지날 때 친구와 나는 ‘네가 없었다면 난 벌써 집에 갔다.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라고 말을 했어요. 저 멀리 10km 목표가 보이자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 마치 걷지 않았다는 듯, 그래도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지로!
10km 결승선에 도착하자 갑자기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보고 환호한 게 아니었죠. 깜짝 놀라 뒤를 보니 하프코스 21km를 1등으로 들어온 사람이 제 옆에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우리는 하프 21km를 달린 1등 선수와 함께 결승점에 도착한 거예요.
다음 날 신문에는 ‘KNN 주최 마라톤 대회 하프 우승자가 결승점을 통과하는 사진’이 실렸어요 마라톤 대회 21km 1등과 10km 꼴찌가 함께 들어오는 모습이었지요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20년 전 마라톤 대회에 나갔던 신입 꼬꼬마 때를 떠올려봅니다. 달리기에 1도 관심이 없던 저질체력의 나. 술 먹는 계모임에서 갑자기 추진한 마라톤 대회에 나간 나.
하지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그때 기억은 바로 ‘완주 메달의 기쁨, 그리고 함께 달린 사람들’이었습니다. 20년 전 그 경험들이 20년이 후 일도 삶도 포기하지 않은 나를 다독여주고 있어요.
20년 전 달리기 꼴찌였던 내가 20년이 지난 지금은 내 손으로 마라톤 대회를 예약해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내 발로 뛰어나가 거리를 달립니다. 매번 달리기를 시작하면 힘이 들고 후회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면 무념무상 그저 목표를 향해 달리지요.
‘내 목표는 뭘까? 꿈을 실현하고 있나?
달리면서 스스로 물어보다가 알게 된 게 있어요지금 ‘실현’을 발음해 보세요 ‘실현, 실현’이라고 발음해 보세요 실현은 실현이라고 발음되지 않아요
“실현을 발음하면 [시련]이구나"
‘꿈은 그냥 실현하는 것이 아니구나. 꿈은 시련을 겪으면서 실현하는 거구나.’
‘시련은 곧 실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달리기가 그렇죠. 기어이 한발 한발 뛰어서 목표한 피니시 라인까지 닿습니다. 거칠게 숨을 헉헉대고 목에 땀이 흐를지언정 그 시련은 결국 달리기 목표를 실현하게 만들어주지요
사는 것도 그래요. 나는 직장생활 20년 동안 꿈을 실현했을까?’ 생각하다가 '지금은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야 나는 내가 정한 길을 가는 묵묵히 뛰어가는 사람인 거야.' 하고 스스로 인정해 주자고 생각했어요
종종 과거에 내 첫 달리기를 떠올려요. 신입 때 일을 우왕좌왕하던 때도 떠오르지요. 그때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순간, 함께 달렸던 그 친구는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하는 좋은 인연으로 남아 있어요.
1시간 동안 달리기를 할 때면 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영원한 신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내가 전혀 모르는 자아를 찾아 나선다는 것을 끊임없이 깨닫게 된다.
- 조지 쉬언 (George sheehan) -
꼬꼬마 신입 때는 몰랐던 달리기의 매력, 꾸준히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가는 요즘입니다. 다음 주엔 내손으로 예약한 10km 러닝 대회를 앞두고 있지요
나는 다시 내 손으로 마라톤 대회를 예약하고 또 달리기를 하러 가요. 우리의 삶은 계속되니까요 길 위에 나는 계속 달리고 있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