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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단 May 23. 2024

죽은 엉덩이를 위한 쇠질

야, 너두 할 수 있어_프롤로그


오십 년 만에 죽어있던 나의 엉덩이가 살아났듯이... 

당신에게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운동은 중요하다'라는 명제는 '공기가 없으면 죽는다'에 맞먹을 만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잊고 사는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불조심 표어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잃을 게 없는 것이기에 수많은 이들이 도서, 강연, sns 등에서 꾸준히 얘기하고 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까지 나서서 숟가락을 얹는 이유는 운동, 더 정확히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쇠질을 시작한 것이 내게는 반백 살 인생 중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2022년 8월 6일, 집 옆 PT 샵을 찾아가며 일어났다. 


직업 '작가', mbti ‘트리플 I’, 취미는 '눕기', 체형 '마른 비만'이라는 조건만 들어도 대강 운동 부족에 저질 체력이라는 답은 나올 거다.  거기에 화룡정점은 내가 바로 ‘듣보’ 드라마작가라는 것... 

흔치 않은 직업군인만큼 거기엔 흔치 않은 희귀병처럼 따라붙는 여러 질병과 어려움 등이 있었다.

불안과 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우울, 불면, 알코올 의존... 덤으로 사회적 고립까지... 

특히나 허리통증은 만성적 고질병으로 오래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했고 심할 때는 네 발로 기어 진료실에 들어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나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수없이, 수많은 운동에 도전해 왔지만 '숨통이 트이자마자' 도망치기가 일쑤... '애써 움직이지 않는 편'이 내 천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인생의 변곡점은 정말 사소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더라. 

물론 체력보강, 허리통증, 만성피로, 근육 부족, 갱년기 대비 등의 일상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이고, 결정적이고, 위급했던 이유는 바로 백만 년 만에 나타난 썸남이었다.

도무지 성 정체성을 확인할 바가 없이 살아온 장구한 세월...

마치 득도라도 한 양, 1,2차 성징이 드러나기 전으로 회귀라도 한 양, 순수한 '인간, 그 자체'로 살아온 세월이 아득히도 길었다. 

그래서 예상치 않게 나타난 썸남 앞에서 난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사장되어 버린 연애세포는 물론, 애는 낳아본 적 없지만 다산을 상징하는 듯한 풍만하고 여유로운 뱃살, 셀룰라이트로 밋밋함을 커버한 허벅지, 부풀다 만 식빵 같은 등판 등... 

그렇다고 나이 오십 먹어 휴대폰 잡고 톡이나 보내면서 '안 벗고 버티면' 그야말로 로맨스는 호러 되는 거고, 뱃살을 정리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게 언젠지는 나도 몰라하면 연애빙자사기로 소송도 불가피한 거고... 

그날로 바로, 실로 오랜만에 운동모드에 돌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뭔가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돈만큼 강제성 있는 것은 없었다. 아까워서라도 안 하고는 못 버틸 거란 심산으로 무작정 PT샵을 찾아간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정보도, 주변 PT 샵에 대한 조사도 없었다.

그냥 제발 빨리 내 배를 어떻게 해줘! 

그리고 일 년 후, 내 뱃 살은 사라졌다. 썸남과 함께... 

체지방은 27.2%에서 14%까지 줄었고 당당히 배를 까고 엉덩이를 드러낸 채 바디프로필을 찍었으며 주변의 찬사와 동경에 존경까지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몸에 대한 살핌과 돌봄은 내 마음으로까지 이어졌고 어느새 나는 나 지신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러니 떠나간 썸남은 아웃오브 안중이었고 그저 Thanks to 썸남일 수밖에... 

이쯤 되면 그는 내 남은 인생을 축복하기 위해 날 집 옆 PT 샵으로 인도하고 하늘로 올라간 천사 가브리엘이나 미카엘 정도가 아니었을까?


운동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었다.

50년이라는 시간은 자기 객관화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여기며 운동뿐 아니라 커리어, 인간관계 등 이번 생은 글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단 일 년 만에 내 믿음은 뒤집어졌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고 시간은 멈출 수도 심지어 되돌릴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청춘도 아닌 어린이에게나 어울릴 법한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 속속 들어왔다. 


그러니 인생은 존버해 볼 만하지  않은가? 

썸남이 쏘아 올린 작은 공에 오십 세 중년이 회춘을 했듯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것이 내게는 운동이었지만, 누가 아는가? 

당신에겐 더욱 신나고 강력하고 놀라운 일들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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