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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살다 마라톤이라니_02

야, 너두 할 수 있어_10

by 김단단

마의 2K 구간도 끝나갈 즈음, 청계천을 따라 종각역 지점으로 돌아서자 드디어 파이널 지점이 보인다.

그 얼마나 반가운지!

나를 믿고 기다려준 부모이자 애인이요, 나를 살려줄 생명줄인 것이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마지막 질주!!!

터질 듯한 심장의 고통과 해냈다는 성취감이 비례하며 날아갈 듯한 희열이 전율한다.

그러다 뒤늦게 생각난 워치의 정지 버튼을 누른다.

55분 10초! 감상에 빠진 30초 정도를 빼면 54분 대겠지?

첫 마라톤 기록치곤 나쁘지 않다. 순위도 나온다는데 은근 기대가 된다.

메달과 기념품을 받고 함께 뛴 크루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나만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배번호에 붙어있던 칩으로 기록이 되는 건데, 아마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초심은 어디 가고, 구멍 난 타이어에 바람 새듯 차올랐던 흥이 스리슬쩍 빠지는 듯 하다.


다음 날, 내년 마라톤 대회 참가비라도 면제 받자는 심정으로 주최측에 연락을 했는데 어라?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배번호를 묻고 워치 기록을 보내달라하더니 얼마 후, 내 기록과 순위가 수신되었다.

워치 시간보다 30초는 빨랐을 거라고, 주최측에 비굴 모드로 기록을 구걸했는데 세상에나, 54분 30초! 실제로는 40초나 빨랐던 것이다!!!

순위도 10% 까지는 못 들었지만 근사치이니, 첫 마라톤 치고는 대만족이다.



IMG_7883.PNG 2024 YMCA 마라톤 10K


점수, 등수가 무슨 의미냐며 열사처럼 침 튀기더니...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봐!


생애 최초 마라톤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10K를 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서고 싶은 생각과 안전하게 즐기자는 생각이 번갈아 오갔고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영하 17도의 그 날이 떠올랐고 크루들과 함께 뛰던 경복궁, 한강 등도 떠올랐고 고등학생 시절, 죽도록 힘들었던 오래 달리기의 운동장도 떠올랐다.

그 외에도 스쳐 지나가는 삶의 희노애락... (아마 풀 코스를 뛰면 자서전 한편은 쓴 기분일 듯)

그리고 오십이 넘어 말로만 듣던 마라톤에서, 그것도 서울 한 복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내 발이 경이롭고 이런 내가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인생은 고' 라는 부처님 말씀에 백퍼, 천퍼 공감한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쉼도 없는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어 때론 신이나 운명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라톤을 봐도 알 수 있듯, 인간은 때론 이 '고' 를 찾아 애쓰고 즐긴다.

심지어 이 안에서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는 오묘하고 기묘한 존재가 인간이다.

어쩌면 인생에서의 고난과 역경은 '챌린지' 일 수도 있겠다.

"한번 꺾어보시지? 엄청 짜릿할테니..."


마라톤에서 배운 대로, 그렇게 닥쳐올 고통에 여여하고 만만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


IMG_7864.JPG 가보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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