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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Apr 14. 2024

내 청춘의 강물, All by myself

 노래 한 곡만으로도 기억되는 가수가 있다.  얼마 전 작고한 에릭 칼멘은 팝명곡 <All by myself>빛나던 아티스티다. 비록 빌보드 정상의 곡은 아니지만 청춘의 그림자를 떠오르게 하는 영원한 노래다.   

  

 사실 에릭 칼멘에 대하여 아는 바는 별로 없다. 고작해야 <All by myself>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란 노래가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 두 곡 모두 흐마니노프의 선율을 깔고 있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까닭도 있으리라. 에릭 칼멘의 왕성한 활동기가 1970년 중반이니 당시 초등학생이었을 내가 그를 모를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지난봄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내 젊은 날의 한 조각이 사라진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날은 종일 <All by myself>를 반복해서 들으면  오래전 학창 시절로 거슬러 갔다. 에릭 칼멘의 “When 1 was young~”라는  깊은 음색은 어느새  캠퍼스 전경과 지금은 희미해진 벗들을 호출한.   

  

 <All by myself>는 멜랑콜리이며 이는 클래식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이 곡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선율을 바탕으로 한다. 에릭 칼멘의 음색은 흐린 가을 날를 품고 있어 클래식과 어울린다.  프로컴 할럼의 <A white of shade pale>나 팻삽 보이스의 <Go west>와 같은 클래식 선율을 따른 곡들도  있지만 <All by myself>만큼 감동은 주지 못한다.     


 에릭 칼멘의 또 다른 인기곡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역시나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7, 3악장을 바탕으로 한다. 어쩌면 국내의 라흐마니노프 유명세는 <All by myself> 덕분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피아노 2번이든, 교향곡 7번이든 에릭 칼멘의 음색과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천생연분이다 싶을 만큼 잘 어울린다.    

  

 훗날 <All by myself>는 디바 셀렌 디옹이 리바이벌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노래 잘하기로 정평이 난 셀렌 디옹이 부르는 <All by myself> 절창이건만 내 귀에는 깊게 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여러 옥타브를 넘나드는 열창이 오히려 아쉽. <All by myself>는 성층권도 뚫어낼 것 같은 성량보다는 절제미가 우러나야 맛이 나는 까닭이다.     

 무려 7분 동안 흐르는 <All by myself>는 에릭 칼멘의 피아노 연주와 우수 어린 성으로 빚어낸 명곡이다. 특히 가을이나 겨울에 들으면 제맛이다. 가을과 겨울은 내면을 바라보기 좋은 계절이니, <All by myself>지난날을 소환하는 강한 주술이 들어있.  주문은  음악다방에 떠도는 담배 연기와 세상 걱정 없는 파란 웃음소리, 아니면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진 듯한 벗들의 초상을 불러온다.      


 하늘로 날아가던 우주왕복선이 폭발하고, 독재타도가 절정으로 항하던 1986년 겨울. 나는 학내 시위에 뒤엉켜 고단했고 결국 예정보다 일찍 휴학계를 제출했다. 군입대는 이듬해 정월이었으니 무려 8개월가량을 백수로 지내야만 했다. 그래서 헬스장도 기웃거려 보고 책과 음악에 묻혀 지냈지만 시간은 더뎠다. 유일한 낙은 첫 설렘과의 꿈같은 만남이었다.

  

 나의 무료는 선배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그것은 음악다방 DJ 아르바이트였다. 급여는 버스 왕복권과 다방 주방에서 적당하게 해결하는 점심 제공이 전부였다. 내가 담당한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였다. 오전 11시까지는 한가했기에 듣고 싶은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오 무렵부터는 빈자리가 없었고 내가 앉아 있는 유리 상자에는  신청곡이 주렁주렁 들어오곤 했다.

     

 그곳에서 손님으로 온 고향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다른 DJ들과도 어울리면서 진공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학과 소식이 궁금했는데, 그때마다  설렘이 조잘조잘 이야기를 전해주곤 했다. 수업을 끝나면 내가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그녀가 금지옥엽처럼 반가웠다.    


 하루는 다방에 갔더니 곱슬머리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녀석이 내게 인사를 했. 사장님은 주방에서 일할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나보다 어려 보였는데 지쳐 보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매일 이른 오전이면 손님이 없는 까닭에, 주방 알바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담배를 나눠  피웠. 다방에서 잠자리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보아 도피 중인 운동권인가 싶었.   

 

 문제는 주방 알바 녀석이 나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유리 상자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었. 하루는 내가 틀어 놓은 음악에 심각한 얼굴이 되더니 더  심각하게 담배를 피워댔다. 잠시 후 유리 상자를 노크하더니, 방금 그 곡의 제목이 뭐냐고 물어왔다. , 에릭 칼멘, <All by myself>.”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녀석은 기어코 유리 상자 안으로 들어오더니 앨범 좀 달라고 했다.   

   

  감히 주방 알바 주제에 DJ 영역을 침범하다니 불쾌했지만, 손님들이 보고 있으니 하는 수 없이 급히 주고선 쫓아냈다. 그날 녀석은 앨범 뒷면에 있는 <All by myself>를 가사를 메모지에 옮겨 적더니, 종일 흥얼대며 노랫말을 외우고 있었다. 그 후로도 녀석은 내게 팝 음악 지식을 전수받았는데, 그때마다 나와 녀석은 톰과 제리처럼 신경전을 펼치곤 했다.      

 그렇게 <All by myself>에는 1986년 겨울과 금지옥엽 그녀의 웃음소리와 제리 같은 주방 알바 녀석이 들어있다. 그 시절로부터 수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에릭 칼멘의 노래에는 내 청춘의 강물소리가  들려온다.


 "When I was young. I never needed anyone. And making love was just for fun. Those days are gone ( 내가 어렸을 때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았어요. 사랑은 그저 재미에 불과했고, 그런 날들은 가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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