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광주 폴리 둘레길. 폴리(folly)? 처음 듣는 말이다. 검색해 보니 도시 재생 건축 조형물을 뜻한다고 나와있다. 폴리 길은 동명동에서부터 푸른 길까지 이어진 12개의 설치 미술의 거리였다.
흔히 '농장 다리'라고 불리는 동지교 아래에도 폴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전부터 그곳 굴다리를 지날 때마다 독특한 구조물이라 여겼다. 알고 보니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었다. 자주 다니면서도 몰랐다니, 눈 뜬 봉사가 따로 없다.
승효상의 건축은 굳건하고 단순하며 고요함이 스며있다. 그는 스승 김수근에게 받은 영향이라고 고백한다. 불현듯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공간 사옥이 떠오른다. 그곳은 승효상 건축의 탯자리이자 김수근의 아쉬람이다. 공간 사옥을 중심으로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정적이 흐르는 깊은 길이다.
승효상은 달필로 이름이 높다. 그의 필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빈자의 미학』부터이니, 건축이든 글이든 짓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 시대의 건축가로 자리매김한 승효상. 늘 불면에 시달린다는 그는 고인 물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자신을 경계 밖으로 추방하려 든다. 그것은 부와 명예라는 안온함을 뿌리치겠다는 노마드 정신의 선언이다.
노마드는 떠돎이자 순례다. 스스로를 경계의 끝자리로 내모는 순례하는 인간 승효상. 그의 책 『묵상』의 표지는 묵직한 톤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어두운 예배당과 한 줄기 빛이 통과하는 작은 창문. 그 위에 새겨진 고요할 묵黙, 생각할 상想. 글씨체가 강건하다.
『묵상』은 승효상과 학우들이 발로 걸었던 순례의 기록물이다. 묵상은 입이 아닌 진리 자체이신 그분과 마음을 나누는 일종의 수행법이자 손 모음이다. 무엇보다도 묵상을 위해서는 침묵의 문부터 열어야 한다. 그렇게 28인의 동숭학당 학우들은 승효상의 인도를 받으며 고요한 묵상의 풍경으로 들어갔다.
손발이 다니면 관광이요, 마음이 다니면 여행이란 말이 있다. 반면 순례는 성찰과 회개를 위한 발걸음을 뜻한다. 『묵상』은 서유럽 순례 기행문이지만 사실은 신을 찾아 내면의 길을 떠났던 수도승과 그들의 공동체를 체험하는 영적 보고서였다.
동숭학당, 일명 ‘동학’이라는 이들의 다양함과 깊이는 부럽다. 흔히 더불어 걷는 이들을 도반(道伴)이라 한다. 세존은 도반을 가리켜 도의 전부라 했고, 공자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기쁘다고 했다. 마음 깊은 벗들의 교제를 지란지교(芝蘭之交)라 하던가. 승효상의 『묵상』에는 도반의 향기가 짙게 풍긴다.
오래전 혹한의 겨울날. 나와 아내는 <위대한 침묵>을 관람코자 썰렁한 극장을 찾아갔다. 우리는 장갑과 무릎 담요로 무장한 채 정적뿐인 스크린 속으로 들어갔다. 세 시간에 걸친 침묵. 영상에는 바람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 하루 세 번 울리던 종소리. 수도승의 발걸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관객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고작 대여섯. 그때 스크린에 나왔던 수도원이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임을 『묵상』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부터 수도원은 나의 로망이다. 컴퓨터 바탕 화면에 깔린 수방(수사들의 독방) 사진을 응시하곤 했다. 혹시 기혼자도 받아주는 수도원이 있다면 퇴직 후 찾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세상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나를 받아줄 곳은 없겠지만 말이다. 한 번은 아내에게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괜찮은 노후 설계라며, 이왕이면 수도원에 취직해서 월급까지 받게 되면 금상첨화라 했다. 기가 막혀서... 괜한 말을 했다.
수도승이 머무는 독방을 수방이라고 한다. 『묵상』에는 소박한 침대와 낡은 가구, 기도의자, 십자고상이 전부인 수방 사진을 볼 수 있다. 노동과 기도 그리고 침묵과 절제된 식사. 수도원의 식사는 성경 봉독이 울리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하루 일곱 번 바치는 성무일도와 삼종기도 그리고 묵상. 그 틈에 감당해야 하는 소임까지. 깨어있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지금껏 『묵상』을 세 번 읽었다. 그럼에도 매번 첫 장을 펼칠 때면 동숭학당의 일행이 되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또는 지중해와 알프스로 순례를 떠나곤 했다. 그렇게 내 영혼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고 롱샹성당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나는 휴가철이면 피정을 신청하곤 했다. 그동안 예수 고난회, 글라렛회, 베네딕토회, 가르멜 등 여러 수도원을 짧게 머물러 보았다. 그곳에서 바치는 성무일도는 그레고리오 성가는 운율에 실려 풍부했고, 창가에 비치는 여명과 노을빛은 잊을 수 없다. 또한 묵상을 바치고 독서와 산책을 하다 보면 고갈되었던 영혼이 충전되곤 했다.
올해도 수도원에 피정을 찾아갈 것이고. 아내는 늘 그렇듯 그곳에서의 먹거리를 챙겨주겠지. 더불어 가까운 날. 승효상의 건축 작품인 우제길 미술관에도 가보련다. 이왕지사 의재미술관까지 들린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고. 그 모든 발걸음마다 고요가 머물기를 소망하며 『묵상』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