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다란 담을 넘어 들어왔다. 그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다들 세상살이에 눈이 팔렸을 때 도둑처럼 찾아왔다. 진원지는 머나먼 북유럽 스웨덴이었다. 그날 저녁, 몇몇 지인들과 삼겹살의 향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TV를 바라보던 후배가 느닷없이 함성을 지르더니 화면을 가리켰다. 그곳엔 “(속보)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란 자막이 떠 있었다.
몇 해 전,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에 화들짝 놀랐다면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은 경이로움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낭보에, 기쁨이 맥주잔에 부풀어 오른 거품처럼 넘쳤다.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날벼락이다. 맞은편에서 화면을 쳐다보던 지인이 슬그머니 물었다. "사람 이름이 한강인가 봐"라고. 오호라~,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그에게 부커상~ 어쩌고저쩌고 설명하려다가 포기했다.
한강 작가의 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힘겹게,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는 한 학기 한 권 읽기라는 독서교육을 진행하면서 읽었다. 고백하건대 『채식주의자』는 나의 감정선에는 닿지 않아서 겨우 읽었고, 『소년이 온다』는 그 비극적인 묘사에 읽다가 멈추곤 했다. 두 작품 다 수려한 문체가 눈에 띄었다. 이번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심사평에 말하던 ‘시적 산문’ 바로 그것이었다.
오래전부터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의 작품을 좋아했다. 한승원 작가의 사인회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그 무렵 그의 『아제아제 바라아라아제』와 『동학제』는 즐겨 읽었다. 훗날 다시 만나 한승원 작가에게 “선생님의 선학동 나그네를 잘 읽었다”는 허언으로 선생을 아연케 했다. 망신스럽게도 장흥 출신 소설가 이청준과 혼동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진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하며 그분을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의 계절이면 모두가 주목했던 고은 시인. 요즘은 들리지 않은 이름이지만 우리 세대에게 그의 명성은 태산준령이었다.
고은 시인의 삶은 한 편의 서사시였다. 한국전쟁과 네 차례의 자살 기도. 조계종 출가와 효봉 문중의 승려 생활, 미당 서정주 등 문단 인사들과 교류, <폐결핵>으로 등단과 이어진 환속, 지독한 허무와 염세주의로 방황, 가짜 고은 소동, 민주화 운동 선봉장으로 5.18 관련 옥고, 민주화 이후 엄청난 물량의 작품 공세. 자타공인 문단의 최고봉.
1985년쯤으로 기억한다. 하루는 캠퍼스에 고은 시인 초청 시국강연회가 열렸다. 오월의 햇볕 아래 군중은 광장의 바닥으로 모여들었다. 형사로 짐작되는 경직된 표정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그의 강연회는 선지피처럼 강렬했다. 맨 앞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던 나는 그의 음성과 표정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시인은 단상을 내려치고 침을 튀기면서 무도한 독재정권을 규탄했다. 격정적인 그의 말투는 운율이 넘치는 힘찬 시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날 나는 서점에서 그의 시집 『백두산』을 구입했다.
지금껏 책장에는 시인의 여러 책이 꽂혀있다. 『나, 고은』, 『고은을 찾아서』, 『바람, 그리고 질주』,『마치 잔치날처럼』, 『순간의 꽃』등, 특히 『고은 시 전집 1』에는 그의 친필 서명이 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들릴 때면 책 뒷장에 있는 고은이라는 친필을 떠올리면서 가보(家寶)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쯤 그는 문단을 넘어서 시대의 어른으로 자리매김할 기세였다.
동백은 붉음의 절정에서 뚝하니 떨어지는 꽃이다. 시인의 추락이 그랬다. 바다 건너온 미투 바람이 살랑대던 때, 젊은 시인 최영미가 ‘En선생~’으로 시작되는 시를 발표했다. 제목은 <괴물>, En 선생과 괴물. 그 흉측한 괴물이 누구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연이어 그에 대한 추문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한낱 문인의 예술가적인 광기로 치부하기엔 민망한 이야기들이었다. 문득 이런 사태를 예고했던 이문열의『사로작힌 악령』이 떠올랐다.
시인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아~시인이 너무 오래 살았구나 싶었다. 이 수모를 어떻게 감당할까. 그를 향한 미련 때문이었나. 괜스레 마음이 쓸쓸해졌다. 시인의 일산 자택은 어둠에 싸였고 태산준령과 같았던 그의 명성은 무너졌다.
잊혔던 시인의 근황이 작년에 다시 들려왔다. 신작 시집 발표를 시도하다가 출판을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소태를 씹은 듯 안타까웠다. 구순의 세월을 맞이한 시인은 작품으로 자신을 정리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시인의 목소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서재에 있는 시인의 책이 계륵으로 보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뒷말이 있는 모양이다. 어느 여성 작가가 수상을 폄하하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일부 이념단체는 주한 스웨덴대사관에서 규탄 집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그곳 대사관 직원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혀를 찰 일이다. 뭐 그렇다고 분개하지는 밀자. 세상 어디나 별난 인간이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자타공인 보수의 작가 이문열도 ‘매년 기다리던 노벨문학상을 드디어 받게 되어 기쁘다면서 『채식주의자』를 읽고서 새로움을 느꼈노라’고 했다. 이번 노벨문학상 소식에 시인은 어떤 감회가 들었을까. 부질없지만 궁금해진다. 그의 작품 <순간의 꽃>을 읊어본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문득 시인의 꽃이 흐릿하게 느껴진다.
한강 작가는 자신의 일상이 그전과 달라지지 않기를 믿고 바란다고 한다. 거대한 축제의 쓰나미가 두려운 작가의 심정이 읽힌다. 아무튼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 서산에 지는 노을은 처연하거늘 어느새 떠오른 동녘 태양의 광채가 눈부시다. 이렇게 돌고 도는구나. 세상이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