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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SS Oct 14. 2024

캐나다 직장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은퇴 시기를 결정한 이후 받은 새로운 제안


사실 회사에서는 이미 나이를 알고 있지만 규정상 묻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가까운 직장 동료사이라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되고 말하지 않더라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취업 시 이력서나 인터뷰에서 나이를 묻는 것은 차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취업에 필요한 서류에는 특별히 나이를 기재하지 않습니다. 나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가끔 동양인이라는 특징 상 실제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경우가 많아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Sr. R&D Manager로 있으며 17년을 근무한 지금 회사는 작년 초 M&A 되어 그룹의 한 계열사가 되었습니다. 합병된 후 정리해고 등으로 원이 줄면서 늘어난 업무량과 분야별 전문 컨설턴트를 통한 계속적인 인터뷰와 업무능력 평가를 받는 것 등이 넘어야 할 앞에 놓인 스트레스였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출근 후 예정에 없던 CEO의 방문과 전체 매니저들이 참석하는 미팅 연락을 받고 그날에 있을 다른 일정을 살펴보는 친하게 지내는 타 부서의 매니저로부터 인터폰이 울립니다.


'빈 박스 하나 있어?'
'왜?'
'해고 통보받으면 개인용품 챙겨갈 박스가 필요해'
'뭐? 농담하지 마. 그런 미팅은 아닐 거야'

웃으며 끊었지만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계획한 은퇴까지 2년은 더 있어야 되는데... 혹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한데 다시 인터폰이 울려서 보니 이번에는 상사로부터의 콜입니다.

'급히 이야기할 내용이 있으니 사무실로 올래요?'

순간적으로 '해고 통보인가?' 하는 불안감과 함께 잘리면 옮길 수 있는 회사 리스트가 머릿속에 배너광고같이 떠오릅니다. 복잡한 생각과 함께 상사의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도착한 CEO도 자리하고 습니다. 반가운 인사와 근황을 묻는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 오픈할 새 회사와 함께 기존 회사들의 제품개발과 품질관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하는 팀을 만들 예정입니다. 의 책임자를 맡아주면 좋겠습니다.'
'네? 제가요?'


보통 금요일에 해고통보가 많이 일어나 혹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예상과 달리 통합부서의 책임자인 Director를 맡아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많이 기쁘고 흥분되었을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습니다.


'제안 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말 동안 신중히 생각해서 월요일까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7년을 함께했던 사무실 책상과 의자.


사무실을 나오며 생각하니 아마 지금보다 5년만 젊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안을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그 업무를 수행했을 것 같습니다.




이민 오기 전 일본, 독일, 미국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어 캐나다에 오면 쉽게(?) 취업될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감은  번의 인터뷰를 통하여 산산이 깨져버렸습니다. 그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회계사와 의사들조차 그들의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새로운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하는 정도로 이곳 기존 업계의 밥그릇 지키기는 강력했습니다.


캐나다가 아닌 곳에서 쌓아온 화려한 경력은 아무 쓸모가 없었고 오히려 Over-Qualified로 평가받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바로 현실을 깨닫고 이력서 쓰여있던 학력, 경력을 한 줄만 남기고 바닥부터 업무로 능력을 인정받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같으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폐기했을 설비의 단순직 Machine Operator로 시작해서 회사를 옮기며 연구소 QA Technician, QA Manager, R&D Manager를 거치며 지금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제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일하분야에서 목표와 야망이 있었고 이룰 때마다 성취한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목표도달했을 때의 성취감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은 무엇일까' 

'이곳에서도 경쟁하며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나?'


그 정답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시작할  있는 적절한 때가 있지만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늦은 것은 없다고 믿는 서로 모순된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친한 동료들 1~2명을 제외하고는 서로의 나이를 모르고 묻지도 않습니다. 차별이라는 이유로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동양인의 외모 때문에 50대 초, 중반으로 생각한 것이 이번 제안의 이유들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이미 30, 40 그리고 50대의 젊음과 소중한 시간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모두 쏟아붓고 그렇게 성공을 위해 바꾸었습니다. 쌓여가는 나이와 함께 일에 대해 그렇게 뜨거웠던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버렸고 그 특별함은 일상의 루틴으로 반복되며 얇아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안받은 자리는 더 높은 연봉과 보너스 그리고 더 많은 혜택을 주지만 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지 않은 인생에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리에서 내려갈 때가 되었구나.'


몇년 전 아이들에게 선물로 받아 출퇴근을 함께 한 백팩




중년이란 나이를 보낸 이후 몸과 마음으로 이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와이프와 진지하게 은퇴시점과 은퇴 후 생활에 대한 계획을 상의하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앞으로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함께 생활하며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폭포도 보고 와이너리도 방문할 일정으로 주말에  와이프와 Niagara Falls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직장에서 받은 제안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인생의 동료이자 친구인 와이프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CEO와 상사에게 특별한 제안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부득이 거절할 수밖에 없음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정상을 향해 노력하며 올라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오를 다음 사람을 위해 때를 알고 정상에서 내려가는 사람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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