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우윳빛으로 변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지상으로 내려와 자욱한 안개를 거두지 않는 날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잿빛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뒤로 우울감이 슬며시 따라붙습니다.
불을 밝혀야 합니다.
태양은 겨우 하얀 모양으로 체면 유지만 하고 있습니다. 시곗바늘을 한 박자 늦춰놓으니, 어둠은 쉬이 찾아들고, 한국하고는 한 시간 더 멀어졌습니다. 밤하늘은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쪽이 별인지 모두가 희멀겋게 뭉개져 있습니다.
따뜻하고 환한 불을 밝혀야 합니다.
도시의 광장에는 나무 부스들이 설치되고, 곧 사람들을 불러 모을 궁리를 합니다. 아니, 사람들은 저절로 걸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적인 불 주위로 하루살이들이 몰려들듯이, 그렇게 사람들은 밤이 되면 다가옵니다. 큰 나무를 휘감아 불을 훤하게 밝혀둡니다. 빛이 그리운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코 끝을 스쳐가는 익숙한 듯 달큼한 향신료향이 풍기는, 뜨거운 푼치(Punch) 한 모금을 넘깁니다. 떠들어 대고, 웃다가 보면 이 우윳빛 하늘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밝게 꾸며놓은 따뜻한 색상들이 마음에 쏙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시간은 잘도 갑니다. 비슷한 하루를 또 살아가야 합니다. 잘 버텨내야 합니다. 시간은 잘도 갈 테니, 하늘이 엄청 예쁠 때가 또 올 테니까요. 겨울이 오지도 않았는데, 겨울도 금방이라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지혜가 조금 온 이유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