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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Oct 02. 2023

순환


이곳에 십 년 넘게 살면서, 이번처럼 아름다운 9월을 맞이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으레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초가 되면,  갑자기 구름이 휘몰아치고, 뚝 떨어진 기온에 스산한 한기를 느꼈다.
오늘 보는 해가 내일이면 안 보일 거라는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희멀던 밤하늘은 원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왔고, 달과 별들은 매일밤 모습을 나타낸다. 낮의 볕과 밤의 빛 속에서도 유유하게 서 있는 화분들의  모습에 반하면서도, 슬그머니 부러움이 인다. 커튼 사이의 희미한 빛을 젖히고,  나도 자꾸만 발코니로 나간다.


길을 걷다, 풀들이 보인다. 눈이 부신 햇살에 록색도 다채롭다. 여기쯤은 참나물들이 모여있고, 저기쯤에는 쐐기풀들이 함께 자란다. 어릴 적에도 밍밍한 맛에 모른 척했던 뱀딸기도 있다. 이곳에 있다는 게 신기해서 들여다보니, 자기네들끼리 한 곳에서만 자라다.
아주 가까이 서 있는 나무들 나뭇가지와 잎들 서로에게 맞닿아있고,  땅 위로 솟아있는 나무뿌리 옆의 나무에게  다가가 있는 게 보인다. 과땅속으로는 얼마나 친밀하게 가까이 닿아있을까?

식물도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알아본다고 한다. 가지가 잘려 나가고, 열매를 사람들이나 동물, 곤충들에게 다 나눠줘도 생명의 근원인 뿌리는 땅속에서 함께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모습을 세상밖으로 내보인다.




몇 달 만에 안면이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머니는 많이 수척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자신보다  걸음이 느린 개를 어르고 달래 함께 걸었었다. 제는 혼자서,  안 보이던 지팡이 두 개에 의존해서 힘겹게 걷고 계신다.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일상생활에서 부모님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오늘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데, 눈물이 핑 돈다.



올여름에 내가 좋아하는 나무 아팠다. 레인을 탄 정원사에 의해 나뭇가지들이 잘려나갔다. 마치 불타던 열정이, 힘없는 두 다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꺾인 것처럼,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어느 아침, 누렇게 말라서 먼지가 일 것 같은 나뭇잎들 사이로, 초록의 잎들을 봤다. 움큼의 생기 있 매끈매끈한 잎이었다. 예년과 다른 가을 햇살 덕분인지... 나무가  환생하는 거 같았다.




모든 자연이 자기 삶의 궤적들을 그리며 살아간다. 생명은 소멸했다, 생성됐다 하면서 순환한다.
수령이 은 넘은 것처럼 보이는 이 나무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도 한 줌의 푸르름이 부디,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두 손으로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떼어지지 않는  뿌리들처럼, 서로 못다 한 사랑을 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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