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향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Anne Jun 19. 2024

엄마의 시간


우리 엄마와 5일 동안 나눈 대화, 아니 사실은 대부분이 엄마의 혼잣말이었던 거 같다. 한 단어를 꺼내 들면 줄줄이 이어서 나오는 다음 말들은 한 세트로 똑같이 반복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말들이 다시 하루씩 이어진다. 반복된 말을 줄이고 줄이면 약 한 시간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느 자식의 경사스러운 일에, 우리 엄마는 엄마가 아는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말들로 맞바꿔놓았다. 엄마 말대로라면 둘째 언니의 작은 아들은 이번에 청와대에 들어가고, 셋째 언니의 막내딸은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한다. 엄마의 세상에는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이다.

그러다가도, 누군가를 걸고넘어지면 안 좋았던 기억을 들추어내어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야 만다. 

우리 엄마는 말로 포장을 하지 못한다. 자꾸 까먹는다. 떨 땐 숨고 싶어 때있었다.

어릴 때, 커서 결혼하게 되면 꼭 데릴사위 해서 엄마랑 살 거라고 했다. 엄마는 기억하고 있다, 내가 결혼해서도 가끔 그 말을 꺼내놓으셨다. 그랬는데, 나는 우리 엄마가 한 번도 찾아올 수도 없게 아주 멀리 와버렸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떨 땐 유럽으로, 어떨 땐 미국으로, 엄마가 아는 가장 먼 나라에 사는 걸로 만들어 놓았다.



엄마라는 이름의 들꽃에 기대어 자라났는데, 어느 사이 엄마와의 교차점을 지나, 이제는 한참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언제 엄마가 땅속으로 사그라질지 모르는 이때에야 우리 엄마의 순수한 영혼을 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오래, 홀로 서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기댈 수도 없는 그 자리에서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면서.

아마 우리 엄마는, 어릴 적 그저 엄마가 좋아서, 엄마랑 오래오래 살 거라는 그 말을 다시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녹아든 내가 알아도 짐짓 모른 척했던 그 말들을...



5일의 일상을 함께 한 후, 나와 엄마에게는 한 뼘의 지혜가 다가와 있다. 나는 엄마의 큰 마음을 인제야 깨닫고,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차분해진 말씀들을 들려주신다.


하루종일 TV앞에서 시간개념도 없이 지내시는 우리 엄마, 전원일기든 다른 드라마든, 가요무대든 전국노래자랑이든, 그냥 보고 계신 우리 엄마.
이웃 아저씨가 만들어놓은 닭장의 빗장을 아침, 저녁으로 풀고 다시 거두시는 것도 힘에 부친 우리 엄마.
아버지의 일상을 대신 읊어주시는, 아직도 귀가 순한 우리 엄마.
주무시다가도 전화만 받으면 생생해지는 엄마 목소리, 귀찮지도 않은지 주저리주저리, 이것저것 다 꺼내놓고  몇 번이고 얘기하시는 우리 엄마.
그리고 뒤이어 퍼지는 청아한 웃음소리.


엄마를 닮은 작고 예쁜 앉은뱅이 꽃이 어느 날은 피고, 또 어느 날은 진다. 어제와도 비슷하고, 내일과도 비슷한 오늘이 하루 흘러간다. 그 하루 중의 어느 시간이, 나와 자주 겹쳐기를 바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선인(仙人) 으면 정말 좋겠다 생각해 본다.



* 선인(仙人)

:도를 닦아서 인간 세상을 떠나, 

 자연과 벗하여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