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 of Doodle: 예술 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실험
아이들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때이다.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 텀블벅(20세 이하는 오마이펀딩)에 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디자인 재료로 영우(가명)는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끄적인 낙서를 들고 왔다. 꼬불꼬불한 선과 조각조각난 파편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었는데,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이 쓸모없는 낙서를 노트북 파우치 디자인으로 승격시켰다. 영우(가명)는 낙서는 버려진 쓰레기를 표현한 거라 했다. 평상시 환경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남들이 보기엔 수업 시간에 딴짓한 것일지 몰라도 영우는 낙서들 속에 자기표현의 씨앗을 숨겨 놓았던 것이다. 교사가 낙서 속에 담긴 마음을 질문하고, 발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가면서 아이의 삶이 깨어난다.
이런 ‘낙서의 힘’을 아는 사람들의 교육 실험을 말해보려고 한다. 2014년에 시작한 미국의 School of Doodle이다. 겉으로는 자유롭게 창작물을 올리는 온라인 예술 플랫폼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10대 소녀들이 스스로 표현할 권리를 되찾도록 돕는 교육 운동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을 잘하는 몇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가진 자기 언어의 한 형태로 바라보았다.
School of Doodle은 예술 활동의 중심을 두들링(doodling), 즉 낙서에 두었다. 낙서는 평가되지 않는다. 틀릴 수 없고,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진입장벽 제로의 표현 방식은 학생들이 “내가 해도 되는가?”라는 질문 없이 곧바로 손을 움직이도록 만든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두들링은 주의 집중을 유지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언어로 표현되기 전 단계의 생각이 손끝에서 먼저 형태를 얻는 순간. School of Doodle은 바로 이 사유의 원초적 흐름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표현할 수 있다는 감각 자체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대표 슬로건: “Be Loud.”
조용히 자신을 숨기지 말고, 존재를 드러낼 것.
School of Doodle은 처음부터 10대 소녀를 주요 대상으로 정했다. 그 이유는 표현의 가능성이 가장 큰 시기에, 사회는 오히려 소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해.”
“너무 나서지 마.”
“지나치게 드러나면 위험해.”
표현이 가장 필요할 때 표현이 가장 제약받는다.
School of Doodle은 이러한 구조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이 실험은 예술 프로그램이자 동시에 청소년 여성의 자기 서사 회복 운동이었다. “너의 이야기는 말할 가치가 있다.” 이 문장을 조건 없이, 설명 없이, 그대로 건네는 일.
School of Doodle의 운영 방식은 기존 학교와 달랐다. 정해진 평가 기준이 없고 온라인 스튜디오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업로드한다. 주제 제안(프롬프트)은 단순하고 전문가의 ‘지도’ 대신 동료 간 반응과 질문이 중심이 된다. 유명 아티스트가 멘토로 참여하지만, 그들은 ‘선생님’이 아니라 동료 창작자의 위치에 선다. 학생은 지식을 전달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주체로 존중된다. 이 구조는 예술을 ‘잘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기존 학교 모델과 결이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는 표현할 권리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다.
이 실험은 이후 Doodles Academy라는 비영리 기관으로 확장되며 특정 정체성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학생을 위한 시각 예술 교육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Doodles Academy는 교사를 위한 무료 수업 및 프로젝트 자료 제공하고 학생 주도 창작 과정 지원한다.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관점을 형성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을 비롯한 시민성으로 이어지는 사고 구조 설계했다. 즉, 예술은 나를 표현하는 일에서 멈추지 않고 타인과 관계 맺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School of Doodle은 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질문은 선명하다.
예술이 정말 모두의 언어라면, 왜 우리는 학교에서 ‘잘하는 사람’만을 중심에 놓아왔을까?
아이는 이미 표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부족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허용된 공간,
즉, 표현이 멈추지 않도록 버텨주는 여백이다. School of Doodle은 그 여백을 학생의 손에 돌려준 실험이었다.
낙서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School of Doodle은 그 움직임을 억누르지 않고, 그저 멈추지 않도록 문을 열어둔 것뿐이었다.
어쩌면 예술 교육의 시작은 거창한 기술이나 거대한 무대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말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너는 표현해도 된다.” 그리고 그 말은, 많은 아이들에게 삶을 다시 여는 첫 문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