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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young Lee Aug 30. 2020

대롱과 방울

만파식적 

대나무 마디를 뚫어 대롱을 만들고 구멍을 여러 곳에 내서 연주하는 악기가 대금이다. 대금에는 갈대 속에서 나온 얇은 막을 붙여 울림을 만든다. 그래서 대금의 목청은 처량하다. 갈댓잎 서걱대는 가을 하늘빛의  서늘함이 감돈다. 


초보자가 대금을 배울 때 첫소리를 내는 것이 많이 어렵다.  어느 날 대금 학습반을 꾸린 교수님께서 초대를 해서 덥석 등록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가장 싼 대금을 한 개 샀다. 선생님은 대금의 구멍에 입술을 얹고 조용히 숨을 불어넣으면서 그 숨이 대롱 전체와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저 휙휙 바람 새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울 때, 어디선가 삐이  하는 소리가 났다. 모두 다 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는데, 아뿔싸 그는 다름 아닌 나였다.  부러움이 눈방울들이 일제히 쏠리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대금에 숨을 불어넣었고. 다시 대금은 내 숨에 반응하여 온몸을 떨었다.  어쩌다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가 일단 나자, 선생님은 악보를 던져주셨다. 악보에는 콩나물 대가리는 보이지 않고 원고지 같은 것에 한자가 쓰여있었다. 궁상각치우 이것은 우리의 5 음계다. 서양이 8 음계인데, 우리는 오음계로 감정을 표현한다. 물론 그 오음은 음양오행을 뜻한다. 그러니 우리의 악보는  목화토금수의 오행이 이리저리 순서를 바꾸며 상생과 상극을 오가는 운명의 소리가 된다.  궁상각치우 소리를 내기 위해 다시 입술을 얹고 구멍들을 지시에 따라 막았다. 높은음은 그럭저럭 나는데, 낮은음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연습을 하고서 낮은음을 내는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음은 정말 마음을 떠 받쳐주는 것 같다. 


이때도 우리 반 학생, 아니 교수님들은 픽픽 거리며 첫소리를 못 냈다. 내가 도라지 타령을 불러댈 때, 이들 중에 한둘이 소리를 처음으로 냈다. 그리고 나는 다른 곡들로 넘어갔다. 잠시의 시간 차이가 있었지만 사람들도 모두 도라지 타령에 경복궁 타령에 모두 신나게 대금을 불었다. 


선생님은 이제 산조를 가르치겠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자기를 보면서 따라 하란다. 산조는 말 그대로 흩날리고 가다듬는 것이다. 가다듬어 단정하면 바로 흩날려서 어수선하게 하고, 어수선하면 단정하게 가다듬는 음악이다. 그래서 자기 맘대로 연주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악보도 없다고 한다. 여기쯤에서 나는 결정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이제까지 나보다 한참 지진하던 다른 이들이 선생의 연주를 보면서 팔뚝을 흔들면서 수리를 내는데, 나는 선생님의 운지를 보면, 내 손가락이 반대로 돌아가고 하여. 영 이와 같은 수련에 안 맞았다. 아마 악보를 주었으면 연습으로 극복했을 것 같다. 


결국 나는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100일을 곰과 견디어야 했던 호랑이처럼 산조를 하다가 대금을 때려치웠다. 물론 여름날 대금 산조를 제멋대로 연주하는 나의 학습반 지진아들의 자랑스러운 대금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지만 말이다. 


대롱은 이렇게 우리의 숨이 들어가 온몸으로 울어주는 신기한 존재다. 우리의 숨도 사실 허파에서 입까지 대롱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니, 대롱과 대롱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대롱대롱 뭔가 매달려야 할 것 만 갔다. 그건 대롱 끝에 맺힌 방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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