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프로젝트 B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연락하는 친구가 있다. 어리던 시절 우연히 만나 불붙어버린 관계는 활활 불타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시절, 취준생 시절, 고시생 시절, 신혼부부 모든 시절 인연을 쭈욱 지나 결국 엄마 시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친구. 매일매일은 아니어도 무조건 한 주에 한 번씩은 연락하면서 서로의 안부 및 생사를 묻고, 요즘 어때를 묻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까지 시시콜콜 공유하는 아주 소중한 인연이다.
친구랑 또 모처럼(그래봤자 일주일이건만) 통화를 나누면서의 일이다.
“나 이제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 지 알 것 같아.”
라고 말문을 연 친구의 말에, 10대의 나였거나 20대의 나였으면 왜? 무슨 일 있어? 요새 많이 힘들어? 같은 말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그 친구의 우울감이나 상실감, 그리고 허무감을 해소해주려고 애썼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맞아, 나도 알겠더라.
라고 대답했다.
갑작스럽게 공감능력이 약화됐다거나 사회성이 결여되었거나 한 게 아니었다.
그 순간 정말 휴대폰 너머의 우리들은 그때 절절하게 서로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빠듯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우리는 우리의 앞에 너무도 막막한, 거대한 단단한 무언가를 만나버렸고, 그리고 우리는 절대 어떤 몸부림으로도 이 통곡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거라는 걸.
깔깔대던 소녀 시절이 너무 그립다. 그냥 흔한 떡볶이 하나 나눠먹기도 벅찬 시절이었다. 좋을때다, 하던 어른들이 그때는 마냥 뭐가 좋지? 자기들은 자기 앞가림 할 수 있는 나인데, 싶었지만 요즘 들어서 교복을 입고 깔깔대며 삼삼오오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소리가 나온다. 좋을 때다.
뭔들 할 수 있고, 뭔들 하고 싶을 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과거와 달리 사회적 연령이 낮아졌다고 얘기하지만, 글쎄다. 나는 자꾸만 아이의 낡아빠진 애착인형같다. 한 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충족감을 한껏 받아들인 적도 있었고, 나 없이는 안될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어떠한 역할에 푹 젖어 충실히 살았고, 그 경험은 내 자부심이 되었다다는 것은 부정할 생각이 없다. 게다가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건 많은 사람이지만, 이차저차 뭐 때문에 안돼, 뭐 때문에 별로야 하고 자체적으로 검열하고 있다.
네 나이면 난 뭔들 하겠다!
하는 엄마의 불호령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렇겠지 엄마. 엄마는 내 나이가 너무 예쁘겠지.
그렇지만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이 나의 우울함을 낮춰주진 않는다. 10대의 내가 그랬듯이. 그때는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앞으로 현격하게 더 나아지지 못할 것이라는 경험적인 예감.
아주 작디 작았던 아이는 저만치 컸고, 젊었던 나와 남편은 낡았고, 점점 나의 부모는 더 늙어갈 것이고, 그러면서 앞으로 내게 남은 것은 지금까지 겪었던 행복감만큼 크게 만져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
그리고 앞으로 더는 나아지지 않을 시신경과 치아를 가지고 남은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병원에 가면 너무 늦게 오셨네요, 혹은 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할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두려움.
계속해서 이 지지부진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으며 앞으로도 끌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책임져야만 하는 것들은 늘어나며, 책임지지 못할 일들에는 발도 디디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번아웃이자 노잼시기라기엔 꽤나 길고 불확실하게 온 정신적 갱년기가 따로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정된 시점에 늙은이 아닌 낡은이가 되어버린 나를 발견할 줄은 몰랐다.
애저녁에 잔치는 끝나버렸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에서 차용하였다.
. 나도 안다.
격렬한 잔치는 이미 버거운 삶 어느 하루 뒤로 넘어간 지 오래고, 이제 나는 어떻게 남은 시간들을 다독이면서 뭘로 애잔함을 쓰다듬으며 오늘 저녁은 뭘로 지어먹고, 내일 점심은 또 뭘 먹고, 이번 주말엔 어떤 것으로 잔잔한 행복감을 느끼며 남은 삶을 버텨내어야 할지를 고민한다.
적당히 건강하고 어디 한 군데 아픈곳도 없지만 점점 노후화되고 있는 구축 아파트 같은 몸을 가지고 때로는 한번 몸갈이 하고싶다는 얼토당토않는 꿈을 꾸기도 한다. 다소간 삐뚤어진 척추와 뻣뻣해지는 목을 주무르며 따뜻한 사우나나 마사지를 그리워하는 나날들. 푹신한 침대보다 오히려 딱딱한 침대가 경추에 좋다니 딱딱한 잠자리를 택하고 저녁이면 약간씩 초점이 맞지않는 눈을 굴리며 애써 생각을 미뤄두는 일상들. 나날과 일상이 쌓여 또다시 권태를 느끼게 되는 순간, 나는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우울감이 참을 수 없이 가득 차는 날이면 나는 괜히 자는 아이의 얼굴을 매만져본다.
나의 우울은 아이로 인해 기인하는 것일까. 나의 인생에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과연 이 같은 우울감을 느끼지 않고 늘 청춘처럼 살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내게 아이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단호하게 ‘아니다’다.
나는 아이를 가져서 우울한 것도, 아이를 키우면서 지친 것도, 아이와 함께라서 낡은 것도 아니다. 더는 과거처럼 살 수도 없고, 이미 충분히 웃었고, 충분히 운 것처럼 느껴지는 이 단조로운 번아웃이 아이 때문이라고?
그건 너무 지독한 회피형의 답변 아닌가. 나의 인생은 아이가 아니었어도, 어딘가는 망한 채로, 어느 곳은 접힌 채로, 일부분은 지친 채로, 점점 낡은 채로 흘러갔을 것이다. 아이는 아주 밝고도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그게 너무 고맙다. 잃어버린, 또는 잊어버린 시간 곁에 누군가의 시간이 시냇물처럼 함께 흘러와줬다는 것은 지긋한 시간을 홀로 버텨왔다는 외로움을 없애주는 길이다.
낡은 엄마가 가끔 한탄하는 것은, 접혀진 허리를 펴며 에구구 거리는 것은, 때로 아이를 보며 한숨 쉬는 것은 아이를 예전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친구를 앉혀두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육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를 낳아서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로 인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기실 죽지 않은 채로 지치고 낡아버린 생을 살아야 할 이유를 나는 남은 평생에 걸쳐 남의 생을 빌려 얻은 셈이다.
더 귀하게 살아야 해.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해.
나는 아이의 하나뿐인 엄마이기 때문에, 낡아빠진 내 육체와 정신과 삶을 새로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귀중하게 여길 뿐이다.
언제나 내 외사랑의 대상일 것이고 사랑으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게끔 할 아이로 인해 평생의 짝사랑을 얻었고, 또한 기나긴 기다림을 얻었다.
엄마의 남은 시간들이 이제는 오로지 사랑 하나로만 가득 찰 수 있는 시기를 넘어서버렸다는 허무를 아이가 이해하게 될 때가 올 테다, 그 때가 오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격려와 위로를 위해 엄마는 오늘도 낡은 애착인형인 채로 하루는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씻고, 어떤 날은 다시 검댕을 묻히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머리를 감고, 또 어떤 날은 베이킹소다를 바른 것처럼 견뎌보겠다.
잔치는 끝났어도 웃음 지을 수 있는 날은 오고, 아무 날이 아니어도 새파란 하늘을 보며 아 예쁘다 하게 되고, 아이의 애교 섞인 웃음에 같이 꺄르르 하고, 공을 잡으러 같이 뛰어다니고 하는 날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지. 그렇게 또 그렇게 하루를, 또 하루를 넘기다 보면 돌이켜
아, 또 드디어 너의 잔치가 시작됐구나. 그건 내겐 너무나도 상관있지.
하는 날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