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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n 07. 2023

손질 잘 된 프로그램

회고록: PDP 시절 1 (난제 해결사)

갑작스러운 뇌출혈 사건을 겪다 보니 내 삶의 회고록을 서둘러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전글 "아내의 후다닥 성격이 살려낸 남편의 목숨" 참조) '홍플마의 젊은 시절은 어떤 삶이었을까?' '우리집 추억담' 문집에 담아서,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특히 아들에게는 더 귀중한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헨리의 단편 소설 중에 '손질 잘 된 램프'라는 소설이 있다. 이 제목은 성경의 내용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손질 잘 된 램프'라는 말이 전하고자 하는 교훈은, 항상 잘 준비를 하고 있어야 어느 순간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본 글의 제목을 정했다. 사유는 이렇다.

예전 회사에서 난 어떤 연구 개발 프로그램 하나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그다지 급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난 진짜 열심히 밤을 새워가며 그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그런데 완성 시점에 사업팀 신제품에서 촌각을 다퉈 해결해야 하는 아주 심각한 불량 문제가 발생했는데, 우연히도 그 프로그램이 그 불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열쇠였었다.




"홍플마 선임의 제안을 즉시 실행하시오"


내 보고서에 대한 사업팀장의 결재 코멘트였다. 명령을 받은 수신인란에는 개발파트, 제조파트, 품질파트 등의 파트장들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이 보고서 하나로 나는 회사에게 갖고 있던  마음의 빚을 몽땅 갚았다고 생각한다. 즉, 월급값은 해낸 것이다.


이 보고서는 당시 PDP (Plasma Display Panel) 사업팀을 심각하고 괴롭히고 있던 불량 문제의 해결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이 문제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첫 직장에 대한 기억은 월급 루팡이라는 초라한 모습뿐이었을 것이다.


난 PDP 팀에서 세 개의 난제를 풀어낸다. PDP라는 상품의 개발 전체를 놓고 보면, 이들은 아주 작은 미미한 일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자랑해도 될 만한 것들이라 생각하여 회고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위의 보고서에서 언급된 문제로서, 난 이 보고서를 매우 아름다운 예술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박사 학위 학창 시절부터 갈고닦아온 모든 능력들이 총체적으로 사용되었고, 불량의 원인과 해결책을 아주 명쾌하게 분석해 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도 내 아이디어로 풀어내기는 했지만 약간은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사업팀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골치 아팠던 난제를 해결한 것이기에 성과만으로 보면 대단한 것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일종의 고급 퍼즐과 같은 문제로서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문제였는데 모든 사람이 해법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난 이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많은 칭찬과, 칭송들었었다.  문제의 해법은 수학적인 완결성을 갖춘 아름다움 그 자체라 생각되어 더욱 사랑스럽다.

 (본 글은 첫 번째 난제에 대한 내용이다. 앞으로 순차적으로 여러 가지 내 경험담을 써 내려갈 예정이다.)




때는 1990년대 말엽의 S사 PDP 사업팀이다. 당시는 PDP라는 대형 평판 TV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이었다. 일본의 후지쯔사가 PDP TV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시킨 이후 한국과 일본의 모든 전자 회사들은 PDP 사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대형 평판 TV 시장이 열릴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S사도 PDP 사업팀을 발족시킨 후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회사의 중앙 연구소에서 PDP를 연구하고 있던 인력들은 모두 이 사업팀에 배치되었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PDP의 작동 원리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PDP는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을 내는 아주아주 작은 형광등이 평판에 쫙 깔려있고, 이 형광등들을 개별적으로 껐다 켰다 하며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후로는 이 '형광등'을 'PDP 셀'이라 부르기로 한다.) PDP 셀에 특정 전압을 걸어주면 이 셀이 켜지는 방전이 일어나는데, 이 특정 전압을 우리는 '방전개시전압'이라 부른다. 방전이 일어난 셀 내부의 가스는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나는 플라즈마 물리학을 전공한 박사 학위자였고, 내 특기는 플라즈마의 상태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추적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PDP 셀의 내부 상태를 물리적인 수식으로 모델링한 후 그 수식을 풀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고급 능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 능력이 아무리 고급일지언정 내가 PDP 개발 과정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란 것이 실제 PDP 제품 개발에 그대로 활용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난 PDP '사업팀'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잉여 인력일 수도 있었다.

 

다행히 당시의 사업팀장님은 선행기술파트라는 일종의 연구소 성격의 조직을 사업팀 내에 만들어 나같은 인력을 그 조직에 배치했다. 덕분에 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우선 해야 할 일은 PDP 방전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었는데, 이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회사 중앙 연구소 시뮬레이션 연구팀의 도움으로 이미 개발 완료된 프로그램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PDP 셀 내에서 일어나는 플라즈마의 거동을 살펴보는 정도였고, 그 거동을 한번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그 프로그램을 활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발 난이도는 무척 높았지만 사업팀에서 사용하기에는 실용성이 낮았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플라즈마 거동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 명하기로 한다.)


PDP '사업팀'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실질적으로 PDP 개발(연구가 아닌 상품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이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PDP 셀의 '방전개시전압'을 계산하는 일이었다. 이 방전개시전압이라는 것은 PDP 셀의 설계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왜냐하면 PDP 셀에 가해진 전압이 방전개시전압보다 높냐 낮냐에 따라 PDP 셀의 켜짐과 꺼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PDP 셀의 특이한 구조 때문에 방전개시전압 계산 프로그램의 개발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여하튼 난 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실질적인 PDP 셀의 설계에 직접 활용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PDP 셀의 설계 변수는 (좀 극적으로 과장하자면) 수십 개나 되는데, 그 변수들의 물성 값들을 아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PDP 사업팀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이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플라즈마 거동 시뮬레이션 프로그램'과 '방전개시전압 계산 프로그램'을 합치는 것이었다. 이 말의 의미는 방전개시전압 계산 시 셀 내에 잔존하는 플라즈마의 영향도 고려 하겠다는 것이다. 방전이 일어났던 셀은 플라즈마가 잔존하면서 그 셀의 방전개시전압을 변화시켜 버린다. 따라서 방전이 일어났던 셀과 그렇지 않은 셀 사이에는 방전개시전압의 '전압 차이'가 발생된다. 그리고 이 '전압 차이'가 방전개시전압 자체보다 더 중요한 설계 요소였다. 난 이 프로그램들을 활용하여 PDP 셀의 설계 변수들 별로 '전압차이'가 생기는 경향성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제 이 통합 프로그램은 곧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인다. 이는 마치 제목에서 언급한 '손질 잘 된 프로그램', 즉 '잘 준비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겠다.




프로그램들을 완성한 후, 난 이 프로그램들을 활용할 수 있는 연구 테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곧바로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은 당시에 일명 '비내림'이라 불렸던 화면 불량 문제였다. 이 불량은 해상도가 높은 PDP를 새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발생되기 시작했다. 아주 밝은 화면이 계속될 때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꺼져버리는 셀들이 발생하면서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불량이었다. 난 직감적으로 이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불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화면에서는 PDP 셀의 방전이 세게 일어나 플라즈마가 더 많이 발생하고 이웃 셀 간에도 플라즈마 간섭이 일어나 방전개시전압을 상당히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데, 내 프로그램은 그러한 현상을 정량적으로 시뮬레이션 해낼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니, 이것은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 타이밍이 절묘했다. 하늘이 나를 돕는 듯했다. 내가 프로그램을 완성하자마자 이 문제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개발파트는 비내림 불량때문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셀의 설계를 어떻게 변경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대략 의심 가는 변수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제조파트에서는 명확한 설계 변경의 근거를 요구하고 있었다. 제조파트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성과도 없이 뺑뺑이만 도는 노가다 작업을 계속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개발파트는 쉽게 설계를 변경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의심이 가는 변수가 골치를 더 아프게 했다. 이것을 변경하자면 메탈 마스크를 새로 제작해야 하는데, 그것만의 제작비용이 팔천만원 정도였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제작 비용이 아니라, 제작 시간이었다. 새로 마스크를 제작하려면 꽤 많은 시일을 필요로 했고, 그러면 해당 PDP 모델을 출품하기로 약속했던 전자전 일정을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이 설계 변경으로 '비내림' 불량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불량 문제를 접하자마자, 나도 곧바로 시뮬레이션 계산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뮬레이션이란 것이 마냥 쉬운 작업만은 아니다. 수많은 변수들 각각에 대해서 그 값을 조금씩 변경해 가며 프로그램을 돌려야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또 분석해야 한다. 데이터 분석이 끝나야 그때부터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본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 아무튼 시간이 엄청 많이 드는 '노가다' 작업이 필수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업팀에서 필요로 하는 타이밍을 못 맞출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비장의 무기들이 있었다. 난 박사 학위 시절부터 플라즈마 거동 프로그램 개발만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know-how도 연구했었다. 즉, '노가다'를 최소화시키는 방법들을 연구해 놓은 것이다. 논문과 관련된 직접적인 연구 테마는 아니었지만, 난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이 더 재미있었다. 아무튼 난 변수들을 자동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거기에서 나온 데이터들을 자동으로 분석하는 나만의 '시뮬레이션 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뮬레이션해야 할 설계 변수들이 수십 개이든 수백 개이든 내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know-hwo'는 나만의 특기 중의 하나였다.

내가 갖고 있던 또 한 가지 무기는 'hgraph'라는 그래픽 툴이었다. (이전 글 '프로그래밍의 즐거움' 참조). 학위와는 전혀 무관한 이 프로그램의 개발 때문에 내 박사학위도 상당히 늦어졌는데, 뒤늦게 회사 업무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hgraph'에는 수십 종류 데이터의 그래프를 A4 용지 한 페이지 내에 순식간에 그려낼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 기능이 큰 장점으로 활용되었다. 데이터 분석 시 그래프를 이용하면 훨씬 수월해지는데, hgraph가 금번의 불량 분석 문제에 딱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hgraph'도 나만의 특기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난 나만의 특기들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수십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 보고서에는 PDP 방전 셀의 각 설계 변수들이 '방전개시전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상세하게 분석되어 있다. 그리고 아주 밝은 화면이 연속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이유 때문에 '비내림' 불량이 발생하는지도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적어 넣었다.


"비내림 불량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셀의 변수 중 OO의 값을 A에서 B로 변경하면 된다."


다행히도 내가 변경을 제시한 설계 변수는 메탈 마스크를 새로 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고, 제조팀에서 즉시 실행해 볼 수 있는 있는 것이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사업팀장의 결재 코멘트는 이 보고서의 결론에 대한 것이었고, 얼마 후 비내림 불량 문제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은 비내림 불량 문제가 정확하게 내 제안에 의해서 해결되었는지 아닌지를 난 정확하게 모른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다른 방법으로 해결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몇 가지 간접적인 증거들 때문에, 내 제안이 결정적인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을 내 무용담 형식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당시에 난 내 공치사를 하기 싫어서 일부러 비내림 불량 문제를 PDP 팀 내에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는데, 고생하는 PDP 팀원들을 배려해서였다. 당시 PDP 팀원들은 개발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모두가 고생하고 있었다. 반면에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기에 고생하는 PDP 팀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난 퇴사를 했기에 이후의 소식을 더는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시의 사업팀장님이 무척 고마우신 분이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일부러 나를 아껴서 나를 편하게 지내게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바쁜 사업팀 내에서 어찌 보면 필요 없을 수도 있는 인력인 내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퇴사한 이후로는 사업팀장님을 만나 뵌 적이 없어 당시의 나를 기억은 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난 퇴사한 후 LCD 부품 업종으로 이직했다. 당시 LCD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는데, 그만큼 새롭게 연구해야 할 테마도 엄청 많았다. 그곳에서 난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연구 개발들을 주도적으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중의 하나로 장영실상을 받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한편 내가 PDP 업계를 떠나 LCD 업계에서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내 젊음을 쳤던 PDP에 대한 애착은 여전히 컸었다. PDP 분야에서 연구해보고 싶은 테마도 여전히 많이 있었다. 그런데 슬픈 일이 발생했다.  LCD가 대형 평판 TV 시장에도 진입하더니 PDP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PDP는 LCD와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형 평판 TV는 PDP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난 가끔 'PDP를 배신한 변절자'라는 농담 섞인 말을 듣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비내림 문제와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난 확실한 활용성도 모른 채 필요는 하겠다는 예상만으로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왔었는데, 비내림 문제를 통해서 그것들의 유용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완성 시기와 비내림 문제의 발생 시기가 우연히 일치한 것도 행운이었다. 또한 박사 학위 시절에, 박사 학위 연구가 지체되는 가운데서도 취미 삼아 개발해 놓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모두 유용하게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도 행운이었다. 그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면서 했던 고생들이 작게나마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게 월급을 주는) 회사에 작게나마 보답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경험들을 통하여 아들에게 교훈적으로 말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언제쯤 아들이 이 글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즐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손질 잘 된 램프>가 되도록 노력해둬야한다."

이다.


(2023년 6월 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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