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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l 21. 2023

고부간 갈등이 없는 이유는?

   "여보, 이것 좀 하나 먹어줘."

아내가 고구마 하나를 들이밀며 내게 먹기를 강요한다.

   "오늘은 고구마 안 싸가? 고구마가 자기 간식 이래며."

   "두 개라서 그래. 난 두 개는 못 먹어. 이거는 자기가 좀 먹어줘."

그러고 보니 아내에게 고구마가 두 개나 있었다.

   "지금은 배불러서 안돼. 나중에 먹을 테니까 저쪽에 놔둬."

방금 아침밥을 먹었고 또 다이어트 중이라 더 먹을 수는 없었다.

   "안돼. 지금 빨리 먹어야 해. 빨리 먹어 없애야 한단 말야."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아내의 말이었다. '먹어 없애야 한다'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 이상한 상황은 아내의 이어지는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고 난 재빨리 고구마를 먹어 치웠다. 이로써 난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한 희생은 숭고한 미덕이다'라는 좌우명을 하나 급조하고 그것을 즉시 실천했다. 다이어트 계획을 깨는 희생쯤이야 얼마든지  수 있다. 아내를 위해서라면. 난 참으로 멋진 남편이다.


아내는 직장에서의 간식거리로 삶은 고구마를 한 개씩 싸간다. 영양이 만점이라며 철저하게 챙긴다. 이 고구마는 아침밥을 할 때 함께 찐다. 그래서 난 매일 아침 고구마를 씻고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바쁜 와중에 이것은 좀 번거롭다. 이 사실을 아신 어머니께서 도움의 손길을 주셨다. 새벽잠이 없으신 어머니께서 고구마를 다듬어 주시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금일 아침에는 두 개를 씻어 놓으셨단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말씀하시기를,

   "고구마가 작아 보여서 두 개를 씻었어. 두 개 다 먹어."

이에 아내는 '전 한 개만 먹으면 돼요. 하나는 어머니 드세요.'라고 말씀드렸지만,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머니께서는 이해를 잘 못하셨는지 아내를 쫓아다니며 무려 세 번이나 말씀하셨단다. 그러니 마음씨 착한 아내는 고구마를 남기면 어머니께서 섭섭해하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먹지도 못할 고구마를 싸갈 수는 없었다. 이래서 나온 묘안이 남편을 시켜 '먹어 없애는' 방법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어머니는 고구마를 배불리 먹는 며느리 생각에 흐뭇해하실 것이고, 아내는 그렇게 흐뭇해할 시어머니 생각에 흐뭇해할 것이다. 난 이 두 사람이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할 것이다. 나 하나의 자그마한 희생 하나로 온 가족이 다 흐뭇하고 행복하다.




이런 '대신 먹어주기' 희생은 나의 특기이다.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됐. 효자라서 그런 듯하다.

어머니는 하루에 단 한 끼 점심만 드신다. 아내는 아침마다 어머니 식사 차림으로 고민이 많다. 한 끼 식단의 영양 밸런스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특히 동물성 단백질이 어려움을 준다. 어머니는 고기류를 절대로 안 드시기 때문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다. 다행히 생선을 드시기는 하는데 사실은 단백질 섭취를 강조하는 아내강요 때문에 거의 억지로 드시는 것이다. 즉 생선도 좋아하시지는 않는다. 그나마 드시는 것이 굴비이고 가끔 옥돔 구이를 드신다. 그러니 아내가 차리는 밥상에는 굴비와 어쩌다 옥돔이 번갈아서 '자주' 올라간다. 그런데 이 '자주'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는 좋아하지도 않는 생선을 자주 먹어야만 하는 것이 지겨우신 것이다. 이럴 땐 어머니께 비장의 해결책이 있다. 바로 아들이다. 생선이 정말 드시기 싫을 때는 나를 부르신다.

   "승욱 아빠, 이 굴비 좀 먹어줘. 내가 안 먹으면 승욱 엄마가 속상해하잖아. 애써서 차렸는데."

나도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머니를 도와 생선을 먹어 없애버리는 것이 효자로서의 본분이다. 어머니는 생선을 없앴다는 것에 대한 만족으로 흐뭇해할 것이다. 아내는 실상을 모르므로 깨끗이 비워진 어머니 밥상을 보며 흐뭇해할 것이다.


며칠 전 점심에는 나도 배가 부른데 굴비를 갖고 오셨다. 먹어달라고 하신다. 난 싫다고 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어머니는 몹시 실망하신 표정이시더니 힘이 빠진 걸음으로 되돌아 나가신다. 어쩔 수 없이 난 어머니를 뒤따라가 굴비를 먹었다. 밥도 없이 굴비만 먹었다. 그런데 효도하는 마음으로 먹어서였는지 굴비가  맛있었다. 그래서 속속들이  발라먹었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안도감은 물론 흐뭇함도 느끼셨을 것이다.

오늘도 뭔가를 가지고 오셨다. 오늘은 굴비가 아니었다. 옥돔도 아니었다. 게맛살 부침이었다. 근래 어머니께서 맛 들이신 반찬이다. 게맛살에 계란 옷을 입혀 부쳐드리면 아주 좋아하셨다. 그런데 이 반찬도 자주 드시다 보니 지겨워지셨는가 보다. 이럴 때는 역시 내가 해결사이다. 어머니께서 날 부르셨다.

   "승욱 아빠, 이것 좀 먹어줘. 안 먹고 남기면 승욱 엄마가 앞으로는 안 해 줄까 봐 그래. 나 이거 좋아하는데."




우리 집엔 고부간 갈등이란 것이 없다. 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할 듯하다. 내가 이렇게 아내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며 대활약을 하는데 갈등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부터 그런 말이 있잖은가? 중간에서 잘해야 집안이 평안하다고.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아주 잘하고 있다. 멋진 남편이자 효자 아들이다.


그런데 아마 이쯤에서 내 자랑질을 흉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팔불출이라고.

'당신이 잘해서 고부간 갈등이 없는 거라구?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겪어보지를 못했구만.'


자화자찬이라는 것 자체가 본래 꼴불견인데 실상도 모르고 그런다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하다.

그러니 일단 '멋진 남편, 효자 아들'이라는 발언은 취소하자. 독자들께 미움을 받기는 싫다.


그럼 우리 집에 고부간 갈등이 없는 정확한 이유를 알아보자.

우선 생각해 봤다. 과연 나의 슬기로운(?) 처신 덕분에 우리 집이 화목한 것일까?

아닌 듯하다. 이미 아내와 어머니 사이가 틀어진 상황을 가정해 보면 알 수 있다.

만약에 이랬다면 내가 생선을 '먹어주고말고'의 상황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고구마를 '먹어주고말고'의 상황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내와 있을 때는 아내 편을 들어주고 어머니와 있을 때는 어머니 편을 들어주는 그런 박쥐 같은 행동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 우리 집에 고부간 갈등이 없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당사자들이 갈등 자체를 유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집에 고부간 갈등이 없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시어머니 밥상을 차려드리는 며느리의 착한 마음씨 때문일까?
며느리 고구마를 챙겨주는 시어머니의 넉넉한 마음씨 때문일까?




예전에 어머니께 이런 것을 여쭤봤었다. 아내의 착한 심성을 어머니께 상기 시켜드리고자 하는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이었다.

   "승욱 엄마가 착해서 어머니가 편하시죠? 우리 집은 고부간 갈등이 없잖아요."

난 내심 이런 대답을 기대했었다.

   '그래, 그렇게 착한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없을게다.'

그런데 어머니의 대답은 내 예상과 너무나 달랐다.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어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시더니 역으로 질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네 눈에는 승욱 엄마가 무조건 착해 보이니? 그래서 승욱 엄마가 뭘 해도 다 마음에 들어?"

   "예? 승욱 엄마 착하죠.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어머니가 편하시잖아요."

   "이 세상에 백 프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니? 다들 생각이 다른데.

    승욱 엄마가 아무리 착해도 어떻게 모든 게 내 마음에 들 수 있겠니?

    반대로 승욱 엄마는 내가 마음에 들겠냐?

    승욱 엄마가 착해서 내 말에 그냥 고분고분하는 것 같니?

    우리 집이 편안한 것은 승욱 엄마가 착해서가 아니야.

    서로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다 참고 살기 때문인 거야."

어머니 말씀은 약간 서운하게 들렸다. 우리 집 고부간 갈등이 없는 이유는 아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꾹 참고 살기 때문이라는 말로 들려서였다.

   '어머니가 참아야 할 일이 그렇게 많았던가?'

그러고 보니 아내와 나 사이만 해도 서로가 부딪히는 생활 습관들이 너무 많았다. 서로의 생활 프로세스가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아내에게 했던 잔소리들, 아내가 내게 했던 잔소리들을 돌이켜보니 우리는 끊임없는 마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잔소리들이 익숙해져 그냥 흘려버리는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참고 산다'는 어머니의 말씀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아내에게 물어봤다. 며느리에게 일체의 잔소리를 안하시는 시어머니의 너른 이해심에 대한 아내의 생각이 어떠한지 궁금했다.

   "어머니는 항상 남을 배려하시잖아.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그래서 우리 집엔 고부간 갈등이 없는 것 같아.

    어머니가 항상 자기를 배려하고 양보하시니까."

사실 아내의 대답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학습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짖굳은 내 질문에 아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약간은 장난기가 섞인 질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뭐라고? 어머니가 나를 배려한다고?

    그런 분이 왜 당신 고집대로 일 처리를 하셔?

    나한테 양보하시는 척하시지만 실제로는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시잖아.

    그리고 나를 배려한다고하며 하시는 일들이 다 문제를 일으키잖아.

    그냥 가만히 계셨으면 더 좋았던 일들을.

    그리고 어머니 고집이 신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어머니 당신도 '난 고집이 너무 서 탈이야'라고 말씀하실 정도잖아.

    결정적으로 우리 집에 고부간 갈등이 없는 이유는,

    어머니가 무엇을 하시든 내가 다 참고 살기 때문이야.

    뭘 주장하려면 제대로 알고나 말하라구."

아내는 가끔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다. 자식들을 올바르게 잘 키워내신 것을 보면'이라고 말했었다. 그랬던 아내가 이 정도 흥분하여 말할 정도면, 분명 내가 뭔가 잘못 말한 모양이다.

난 어머니가 아내에게 상당히 너그럽고 모든 것을 다 양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내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당신 임의로 하신 일들 때문에 우리가 고생했던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어머니는 물건을 잘 버리신다. 필요 없다 생각되면 가차 없이 버리거나 남에게 줘 버린다. 그중엔 아내가, 내가, 아들이 아끼는 물건들도 꽤 있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물건은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신다.

두 사람의 살림 동선이 겹칠 때도 불편한 일들이 자주 생긴다. 아내가 고등어조림을 할 생각으로 사놓은 무를 어머니는 무생채를 만든다. 아들이 좋아한다고. 아내가 두부 구이를 하기 위해서 두부를 찾아보면 어머니가 이미 된장찌개에 넣어 버렸다. 아내가 아껴가며 먹는 밑반찬을 어머니는 오래됐다고 버리신다. 이외에도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부딪히는 생활 습관들은 수도 없이 많다. 난 어머니와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머니의 생활 습관들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습관들이 매우 불편했으리라. 그렇기에 아내 입장에서는 '참고 산다'가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아내의 말을 정리를 해보자면, '시어머니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참고 살기 때문에 우리 집에 고부간 갈등이 없다'라는 말이다. 아내 말은 마치 자기의 묵묵히 참는 노력 덕분에 고부간 갈등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어머니는 당신의 묵묵히 참는 노력 덕분에 고부간 갈등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말로부터 우리 집 고부간 갈등이 없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묵묵히 참는' 노력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사랑'도 아닌 '인내'였다.


그런데 처음의 내 생각도 틀리지는 않았으리라. 착해서 고부간 갈등이 없다는 말. 두 사람의 심성이 곱기 때문에 참는 노력도 가능했을 것 아닌가?

아무튼 핵심 포인트는 '참기'이다. 묵묵한 인내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냥 참는 행동만으로는 언젠가는 갈등이 터지지 않을까? 그런데 단 한번도 터진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아내와 어머니는 이 잠재적인 갈등을 미리미리 잘 예방해왔다. 두 사람은 참기는 참되 필요시에는 서로가 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출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서로를 조금씩 맞춰왔고 이제는 '억지로 참아야 하는 일' 자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듯하다. 또한 이제는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일은 시어머니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 일은 며느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야'라고 하면서 상대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이 글은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작성을 시작했다. 여러 면에서 까다롭기 한이 없 '나의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아내가 참으로 고맙다. 덕분에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겐 어머니를 행복하게 모셔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이 항상 있어왔다. 아마도 우리들을 키우느라 고생고생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정말 아낌없는 희생정신으로 우리를 키우셨다. 당신만의 사생활 자체가 없으신 분이셨다. 당신만을 위한 행복 추구가 없었다. 모든 삶이 오직 자식들에게로만 향했다. 그러니 자식 된 도리로서 행복한 노후를 마련하여 보은함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머니를 잘 모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특히 아내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러했으리라. 어머니는 인생철학, 살림 철학 등에서 확고 부동한 당신만의 철칙있으시다. 또한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 절대로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법이 없다. 아들인 나와도 논의가 없으시다. 당신이 판단한 대로 계획하고 질러버리시는 분이다. 절대로 타협이란 것이 없다. 그러니 가끔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다. 우리 오남매들은 이러한 사례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 글에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런 어머니를 모시기가 쉽지 않은 일일텐데도 정성껏 잘 모시는 아내는 정말 천사이다.

인생의 천사이다.


며칠 전 가족 모임이 있었다. 이때 어머니의 삶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으레 그렇듯이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추억담들도 나왔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지금은 내가 제일 행복한 늙은이 같애. 너무 고마워."

이 말을 듣고 있던 막내 동생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게 다 어머니 복이에요. 다른 복이 아니라, 형수님과 함께 사시는 복이요."

그랬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동생의 이 한마디였다.

동생의 말대로 우리 집안 화목의 근원은 아내이다.

다시 한번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끝.


(2023년 7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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