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4일 토요일
어릴 적에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삶의 질이 향상되고, 그러면 당연히 모두가 행복할 거로 생각했다. 미술 시간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바닷속에 사는 사람들을 그릴 때만 해도 세상은 분명 점점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이였을 때는 확실히 삶을 낙관했던 모양이다. 연일 새롭고 놀라운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세상은 어떤 상태까지 발전할까. 인류는 어느 지점까지 가려 할까. 이따금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깜짝 놀란다. 계속해서 변해갈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까. 미래의 어느 장면을 상상하면 왜인지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들이 내다보고 만들어 가는 미래가 가끔은 두렵다. 그 세계가 나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를 배제할까 봐. 지금 내게 보이지 않는 삶,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어떤 세계에는 내가 없을 것 같아서, 그 사실이 나의 생존을, 인간으로의 존엄을 위협할까 봐 두렵다. 곧 많은 직업이 사라질 거라고들 한다. 드디어 인간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들 한다. 나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면서도 그게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노동의 강도가 점차 약해지고 노동자의 수가 줄고 그러다 노동자가 아예 사라지는 시대가 정말 올까. 그 시대는 과연 모두에게 이로울까. 어린 날 상상했던 미래의 기술이 하나둘 실현되는 것처럼 모두가 행복한 세상도 언젠가는 정말로 올까. 이제는 그런 걸 믿기보다 ’모두‘와 ’행복‘과 ’세상‘과 ’언젠가‘와 ’정말‘이라는 말로 얼마나 다양한 거짓말을 만들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