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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Oct 02. 2024

지금에 멈춰서

2024년 10월 2일 수요일


남편과 제천에 왔다. 오는 길에 비가 많이 내리더니 다행히 오후부터 비가 잦아들었다. 역시나 둘 다 잠을 설쳤다. 여행은 좋지만 잠은 집에서 자는 게 제일이다. 잠에서 깰 때마다 지금이 몇 시인지, 내가 몇 시간 만에 잠에서 깨었는지 확인한다. 확인한 만큼 더 피곤해질 걸 알면서. 희부연 구름이 아침 하늘을 가리고 있다. 숙소 바깥은 온통 숲이다. 온갖 나무들이 빽빽이 숙소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풍경을 창 사이에 두고 바라본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여덟 시가 되어가니 슬슬 배가 고프다. 여행지에서만이라도 시간에 얽매이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시각을 확인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강박을 좀 내려두고 싶다. 인생의 흐름에 떠밀려 오다 보니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하루키의 말이 생각난다. 무엇을 계획할 필요가 없다는 말, 당장 몇 주, 몇 개월 후의 내가 무슨 일을 겪을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우리는 그런 걸 알 수 없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누구도 끝까지 계획할 수 없다. 어림하고 예측하고 미리 내다볼 수 없다. 나의 강박은 미래를 내다보고 싶어서 생기는 것 같다. 미래의 내가 어떻기를 자꾸만 꿈꾸기 때문에, 욕망하기 때문에. 나는 당장의 나, 지금의 나, 현재의 나, 이 순간의 나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에 멈춰서 삶을 느긋하게 즐기고 싶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나는 바로 지금의 나뿐이다. 나는 시간 여행자가 아니니까. 내 힘이 닿는 범위는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나에 있다. 자꾸만 후에 할 일을 생각하고 예비하느라 지금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한다. 오늘은 조금만 천천히, 느긋하게 살자. 아등바등 종종거리지 말고. 자꾸 시계를 쳐다보지 말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아도 삶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갈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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