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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Nov 01. 2020

까칠한 영혼엔 관심과 사랑을

[작가의작가]14.허무 : 문학이 철학과 역사를 앞설 때

“바자로프는 니힐리스트에요.”

“아무 것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지.”

“모든 것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마찬가지 의미 아닌가?”

“아니, 마찬가지는 아닙니다. 니힐리스트는 어떤 권위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고 제아무리 존중받는 원칙이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지요.”


 아르까디가 큰 아버지 빠벨 뻬뜨로비치에게 친구 바자로프를 니힐리스트라고 소개하는 장면이다. ‘모두까기’의 귀재. 대체 불가능한 하나의 인간상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작가 뚜르게녜프가 바자로프를 니힐리스트라고 명명한 이래로 니힐리즘이라는 용어가 일반화 됐다. 니힐리즘은 과학 실증주의에 의해 절대적 가치와 권위를 거부하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에 의해 하나의 사상으로 발전하는 기폭제를 제공했다. 니체는 수동적 니힐리즘과 능동적 니힐리즘을 나누고 후자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발견한다. 허무라고 하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면서 향락과 퇴폐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런 허무주의가 수동적 니힐리즘이다. 반면에  “어떤 대상에 대해 불평불만을 터트리기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쪽은 능동적 니힐리즘이다. 


 “예전 젊은이들은 공부를 해야 했지. 무식쟁이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별수 없었거든. 하지만 이제는 그저 세상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라고 말하면 그만이야. 젊은이들에겐 참으로 기쁜 일이지. 예전에는 그저 순한 양이더니 이제는 갑자기 니힐리스트가 되어 버렸다 말씀이야.” 


 빠벨 뻬뜨로비치는 바자로프가 못 마땅해 이렇게 힐난했다. 하지만 이것은 뻬뜨로비치가 바자로프의 능동적 니힐리즘을 오해한 탓이다. 자신이 속한 세대의 과제는 ‘모든 것을 깨끗이 파괴’하는 것이라는 니힐리즘 저변엔 사회적 순결성이 숨어있다.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와도 스스럼이 없이 어울리고 청년 의사로서 실험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문학이 철학을 선도한 경우라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 능동적 니힐리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매사 호전적인 바자로프를 달리 규정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도 염두해 두자. 딸들과의 대화에서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싸우는 것”이라고 대답한 마르크스<작가의 작가-10.자본 참고>와 바자로프의 캐릭터가 겹치는 것도 유사하다. 마르크스도 바자로프도 상대주의자다. 절대진리를 거부하는 상대주의자들은 가치 판단 기준이 매사 달라지므로 비판하고 반박하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다가 종국엔 너무 강한 ‘자아’ 때문에 ‘세계’를 부셔버리고 깊은 허무의 심연으로 빠지는 것이 상대주의자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상대주의의 끝엔 니힐리즘이 있다. 니힐리스트가 까칠한 이유다. 


 빠벨 뻬뜨로비치와 바자로프 두 인물의 갈등이 세대 갈등으로 확전되는 양상은 소설의 제목(Fathers and sons)이 복수형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단순히 빠벨 뻬뜨로비치와 바자로프라는 개인간 갈등이 아니라 큰 아버지 빠벨 뻬뜨로비치로 형상화 된 아버지 세대와 바자로프로 대표되는 아들 세대 집단간 갈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급진파과 보수파간 갈등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다. 급진파 신진 지식인들은 농노해방이 유럽에서 가장 늦게 일어났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한탄했고 전통을 유지하려는 보수파와 갈등을 빚었다. 보수 온건주의자들이 큰 아버지 빠벨 뻬뜨로비치로 형상화 된 아버지 세대라면 급진적 신진 지식인들은 입증가능한 사실만 믿는 유물론자이자 경험론자인 바자로프에 대입할 수 있다. 전자가 독일 낭만주의와 관념론, 귀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종교, 개인, 문학과 예술을 중시했다면 후자는 예술을 유용성의 관점으로 대한다.


“남녀 간의 신비로운 관계란 게 대체 뭔가? 우리 같은 생리학자는 그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 자네도 눈의 해부학적 구조를 공부해 보게나. 자네가 얘기한 수수께끼 같은 시선은 어디서 나오지? 그건 다 낭만적 헛소리, 진부한 미학일세. 이제 물방개를 보러 가는 게 좋겠어.” 


 사랑이라는 감정도 바자로프는 앞에서는 입증 불가능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실체 없는 사랑보다 하나의 실체인 물방개를 바라 보는 시선과 기록이 더 유용하다는 생각에서다. 바자로프를 존중했던 아르까디도 그의 지나친 비판적 사고방식에 지쳐간다. 말마따나 종국엔 실체없는 우정마저도 부정해야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르까디는 시를 부정하고 예술을 부정하는 바자로프와 언쟁을 피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배려에 그친다. 그런데 이런 바자로프도 실제 사랑 앞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매력적인 과부 오딘쪼바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자로프의 최후의 순간을 지켜본다. 무기력할 지라도 사랑을 믿었던 아르까디는 오딘쪼바의 여동생과 결혼한다.


 소설은 1859년에서 1860년까지 러시아를 배경으로 쓰여졌고 실제로 이듬해 1861년 농노해방이 일어났다. 작가 뚜르게녜프가 예언자는 아니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니체와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철학 사조의 흐름면에서, 또 농노 해방과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작가의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혁명에 동참하는 행동파 작가였다면 뚜르게녜프는 이성과 가족의 사랑을 그리는 보편적 문학적 순결성에 천착했다.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지식인이지만 온 몸을 내던지는 혁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바자로프가 장티푸스에 걸린 시체를 해부하다가 손이 베고 어이없게 생을 마감한 것도, 뚜르게녜프는 바자로프식 급진적 사상을 이해할 수 있지만 사회를 지배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무하게 죽은 바자로프 대신 아르까디가 안락한 미래를 누리는 것도 혁명보다 사회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쪽을 지지하는 작가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당대 급진파와 보수파 양측 지식인들로부터 모두 비난을 감수해야했다. 급진파는 바자로프가 자신들을 과학 실증주의를 내세워 논쟁하고, 방황하고, 안락함 속에서 혼란스러워했던 당대 진보 지식인을 희화화 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보수파는 정치적 입장을 모호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실제 부자(父子)간 갈등은 없다. 오히려 ‘자식 바라기’ 부모의 전형이 나온다. 부자간 사이는 더이상 돈독할 수 없다. 두 청년의 부모는 오만하고 논쟁을 피하지 않는 자식을 끝까지 아낀다. 세계보다 자아가 커서 세계를 파괴해야만 했던 아들들. 파괴 이후의 삶은 어떠해야하는지. 바자로프 그 다음 세대는 다시 파괴의 의무를 져야하는지. 예상되는 연쇄 파괴에 대한 책임을 유보한 채 뚜렷한 답을 던져주지 못했다. 뚜르게녜프는 어쩔 수 없이 니힐리스트 바자로프를 죽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에너지를 활활 태우면서 삶의 주인이 되고픈 ‘반항적 영혼’을 만날 수 있다. ‘모두까기’ 청년의 되바라짐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이반 S. 뚜르게녜프의 <아버지와 아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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