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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세끼 Sep 20. 2021

조선시대 음담패설 이라굽쇼?

제목만으로 내 취향을 저격하는 책을 발견했다.

<조선의 음담패설>.


식욕과 성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이고

그것이 조선시대라고 다르지 않았을게다.

이 책은 제목처럼 조선의 음담패설을 소개한 것이다.

당시 저잣거리에 나돌던 이야기들을 모은 <기이재상담>이라는 책을

서울대 국문과 정병설 교수가 원전을 풀고 해석했다.  


말 그대로 질펀하고 적나라한 육담들의 향연.

해학적이고 기발한 비유가 넘쳐난다.

물론 지금의 관점과 가치관으로 보면 맞지 않은 부분도 상당히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성의식이 어떠했는지,

또 그를 대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얼마나 발랄하고 유쾌했는지 알 수 있다.

오히려 성을 대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지금이 더 가식적이고 위선적이지 싶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집필동기를 밝혔다.

"음담패설은 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성 이야기는 본능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다. 본능을 말했는데 저속하다고 한다. 식욕을 말하면 동물적이라고 하고 색욕을 말하면 추잡하다고 한다. 정신과 사상은 숭고하고 육체와 본능은 저열하다. 조선시대 유교 사상이 그렇고, 현대인의 일반적 사상 역시 그렇다."


"밥을 그만 먹을 수도 없고 색욕을 끊을 수도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밥에 대한 관심과 색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지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밥과 색을 정신과 사상의 풍요로움과 조화시키는 편이 옳다. 다만 색욕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욕망이기에 자칫하면 상대방을 희롱하거나 강제하는 데 이를 수 있다. 공격적 색욕은 결단코 경계할 일이지만 자신과 상대를 모두 기쁘게 하며 서로를 충족시키는 성은 권장할 일이다."


내용을 구구절절 소개할 수는 없고 목차에 나온 제목 몇가지만 소개해본다.

그것만 봐도 느낌이 딱 온다.


입이 양물만 못한가요/열녀와 수절남의 혼인 /고추 빻는 여인/ 어, 내 남편이 아니네....

등등등.

마치 젖소부인 바람났네 따위의 성인영화와 이를 흉내낸 패러디가 넘쳐나던 90년대 에로 비디오의 제목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19세기 조선에 온 프랑스 신부 리델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를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들게 했던 것이 있다. 간수와 죄수들이 나누는 음담패설이었다고. 아마 조선말에 능통하셨으니 이런 이야기들을 알아들었을텐데,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을 보다보면 신부님 입장에선 정말 듣기 힘드셨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소개된 이야기들 중 가장 놀라고 의외였던 부분은 퇴계 이황 선생에 관한 것이다.

보는 순간 빵 터지고 만.....제목하야 '낮 퇴계 밤 토끼'.

나름 이 쪽 분야에 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 말은 처음 들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미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내용이라고 한다.


"퇴계는 낮에는 근엄한 학자지만 밤에는 토끼처럼 질탕하게 놀았다는 뜻이다. 퇴계의 부인이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퇴계라는 호가 원래 토끼 토자의 토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말이 되는 우스개다."

"제자들이 퇴계와 율곡의 밤 생활을 비교해 보았다. 그런데 율곡은 밤에도 점잖은데 퇴계는 난잡스러워 제자들이 직접 퇴계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퇴계가 답하기를 '원래 음양을 합치는 남녀관계는 점잖게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오히려 율곡에게 후손이 없을까 걱정했다고 한다."(86쪽)


"<어우야담>에는 퇴계와 남명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퇴계가 먼저 자신은 술은 참아도 여색은 참기 어렵다고 하자 남명이 웃으면서 자신은 여색에 있어서는 패배한 장수라고 했다. 퇴계가 다시 어릴 때는 여색을 참기 어려웠는데 중년 이후에는 조금 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87쪽)

이 부분은 허구다. 일생 한번도 만나지 않은 두 학자를 한자리에 두고 가상의 대담을 나눈 설정을 글로 옮겼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실제로 두 학자는 같은 해에 태어났고 칠십 평생을 살았다. 각기 경상좌도와 경상우도의 대표적 학자로 같은 경상도 땅에 있었지만 편지만 몇차례 교환했을 뿐 만난적은 없다고 한다.

천원짜리 지폐에서 늘 뵙던,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오면서 딱히 호감이나 친근감을 느꼈던 분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 책을 읽고 나서 조큼 다시 보게 됐달까....


조선의 음담패설집으로 또 알려진 책은 <고금소총>이 있다. 다른 책들과 달리 유교가 지배이념이던 조선사회에서 이런 자료들은 전승되기가 힘들었다. 조선 전기에는 송세림의 <어면순> 처럼 양반 선비들이 낸 책에 음담패설이 일부 실려 있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에는 저명한 문인이나 학자가 간여한 이런 책들은 볼 수 없다. 그래서 <고금소총>이나  <기이재상담>같은 책들의 사료적 가치가 귀한 것일게다. <고금소총>에 소개된 내용들도 <기이재상담>에 나오는 것들과 비슷하다.

살아남기 힘들법했을 이런 자료들이 어떻게 지금껏 전해졌을까. 저자는 일본이 전승의 주요 경로로 볼 수 있는 증거가 많다고 소개한다. 실제로 이런 자료들이 모두 일본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책 서문에서도 일본의 교수가 서울대 규장각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18, 19세기 일본에서는 조선이나 중국의 소설, 희곡으로 각기 조선어와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한다. 또  <기이재상담>이나 일본 국회도서관 동양문고에 소장된 <고금소총>에는 한국인이라면 불필요한 한국어 단어에 주석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일본인이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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