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차 직장인. 3번째 직업 4번째 직장입니다.

프로이직러가 별거인가요.

by 기록가 최윤지
"OOO님이 인스타에 업로드하신 프로이직러 관련 게시글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혹시 오은영 박사님과 나누고 싶은 고민이 있으실까 해서요!"

지난 2월 인스타로 다이렉트 메시지(DM)가 왔다. 방송국에서 신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 '프로이직러'의 사연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워낙 인스타 사칭(?)도 많으니까 반신반의하면서 동시에 '인스타로 이렇게 컨택이 온다고?' 하며 잠깐 설레기도 했다. 설렘과 별개로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 뒤 해당 프로그램은 실제로 방영했다.


요즘은 이직이 흔해서 사실 프로이직러가 별로 특별한 주제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연락을 받은 걸 보면 프로이직러는 아직까지도 꽤나 쓸만한(?) 주제인가 보다.




6년 차 직장인. 4번째 직장입니다.

아, 직업은 3번 바꿨습니다. 아아, 지역도 3번 바꿨네요.

올해 6년 차 직장인. 이직 세 번을 공백기 없이 환승으로 이직했으니 6년 차가 맞다.

아, 나는 직장만 바꾼 게 아니라 직업도 바꿨다. 직업만 바꾼 것도 아니라 지역도 바꿨다. 그래서 어쩌다 내 고향을 묻는 질문이 나오면 다소 난감하다. 이걸 어디에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혹시 고향이 어디세요?"

- 아 네. 부산이에요.

"아~ 그럼 세종은 언제 오셨어요?"

- 아 네. 올해 왔어요.

"아하? 그럼 원래는 어디 계셨어요?"(여기서부터 당황하기 시작)

- 아, 네. 그게... 스무 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작년에 충남으로 갔다가 올해 세종으로 내려왔어요.


고향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대략 이런 식이다. 내가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지 몰랐겠지. 질문한 사람은 아차 싶을지도. 그래서 설명하다 보면 완전 TMI인데 이것도 꽤나 재밌다. 나를 사연 있는 사람으로 보려나?




내 첫 직업은 기자였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 직업은 꽤나 괜찮았다. 근무도 3년 6개월간 했다. 나는 기자를 꿈꾸던 신문방송학도였으니까. 적성에도 잘 맞았다. 메이저 매체가 아니라 마이너 매체에서도 수많은 기자는 기사를 쓰고 있다. 누구나 볼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어쩌면 아무도 안 볼지 모를 기사를 묵묵히 쓰고 있는 기자도 있다. 이름만 대도 아는 기자가 있는 반면 이름을 들어도 모르는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도 있다. 기레기도 있고 찐기자도 있지만 누구나 시작은 글과 이야기가 좋아서 시작했을 거다.


첫 직장에서는 월간 산업잡지를, 두 번째 직장에서는 일간 경제지를 만들었다. 나는 서울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분야의 최신 소식을 알게 돼 좋았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 있어 뿌듯했다. 기자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 기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무엇인가를 알려야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준다.


그러면 왜 그만두었냐고. 기자는 매일 의미 있는 새로운 것을 알려야 한다. 매일 의미 있는 발제 거리를 찾아내는 게 힘들었다. 아마 발제는 기자 선배들에게도 영원한 숙제 아닐까 싶다. 이에 더해 부장이 새로 오면서 다니기가 더욱 팍팍해졌다. 또한, 내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직업, 오래 할 수 있을까? 선배들을 봐. 여자 선배가 거의 없잖아? 결국 기자는 결혼 또는 육아와 병행하기에는 힘든 직업인 거야. 그러니까 나는 기자를 벗어나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갈 거야!




두 번째 직업은 은행원이었다

돌연 지역농협 공채에 지원했다. 합격이었다.

사실 그즈음에 사주를 봤는데 거기서 은행원이 체질이라고 했다. 숫자도 안 좋아하는데 은행원은 무슨 은행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사주카페에 다녀오고 조금 있다 지역농협 공채가 떴다. 어라? 어디 한번 넣어볼까? 회사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물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엄연히 말하면 지역농협은 은행이 아니라서 은행원도 아니지만 편의상 은행원으로 쓴다. 아마 지역농협은 은행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이 없을 거다. 애초에 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이때 지역을 서울에서 충남으로 옮겼다. 지역을 충남으로 옮긴 데는 대전에 살고 있던 남자친구(현.남편)의 영향이 컸다.


지역농협에서의 1년은. 정말 힘들었다. 사람 때문에. 이때의 사람은 내·외부적 사람이다. 내부는 직원, 외부는 진상이다. 사실 내부 사람이 더 힘들었다. 간호사 친구한테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하니 그건 마치 간호사 태움과 같다고 말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지만, 잘못을 안 해도 혼나면 아무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때 느꼈다.


내 노오력이 부족해서일까? 입사 4개월 만에 신입 60%가 그만뒀다. 그리고 나까지 1년을 채우고 그만뒀으니 1년 만에 80%가 그만뒀다.


그리고 반복되는 어르신과의 씨름. 어르신은 약과다. 잊을 만하면 오는 진상. 그리고 늘 그놈의 시재 맞추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아무리 안정적이어도, 연봉을 많이 줘도 이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며칠만 버티면 성과급을 받을 수 있었는데 성과급도 버리고 딱 1년 1일을 채우고 퇴사했다. 나름의 반항이었다. 그리고 이직했다. 연봉을 포기했다.




현재 직업은 광고기획자다

내 세 번째 직업은 광고기획자(광고AE)다. 이번에도 환승이직을 택했다. 나는 직장이 없으면 불안 사람이 아닐까 싶어 내린 선택이었다. 여전히 충남이긴 하지만 이번엔 세종으로 옮겼다. 언제까지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5개월 차 광고기획자다.


현재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는데 흔히 홍보대행사를 갑, 을, 병, 정 중에 정이라고 한단다. 그놈의 컨펌이 안 와서 일이 진행 안 될 때 보면 확실히 그런지도? 그래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게 적성에 더 잘 맞다. 제안서 때문에 야근할 때도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얼굴이 피었다고 했다. 야근에 찌들었는데 얼굴이 피었다고? 사람은 참 알 수 없다.




프로이직러, 사실 별 거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OOO님이 인스타에 업로드하신 프로이직러 관련 게시글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혹시 오은영 박사님과 나누고 싶은 고민이 있으실까 해서요!"라는 말. 사실 프로이직러와 관련한 고민은 없어 연락하지 않았다. "일 적당히 하고 돈 더 많이 벌고 싶어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도 그들은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는 저, 비정상일까요?" 정도를 기대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프로이직러, 사실 별 거 없다. 사회 부적응자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나 자신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안정적이고 돈 많이 주는 소위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직업이 나와 안 맞을 수도 있는 거고, 어떤 세계든 그 세계에 들어가서 직접 부딪혀 봐야 깨닫고 알게 되기도 하는 것 아닐까.


나와 더 맞는 직업을 찾고 사회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것. 그게 나, 프로이직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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