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나라별로 펼쳐지는 88개국의 미술 올림픽
-2013년도에 써진 글입니다.
옹기종기 26개국이 모여 있는 카스텔라 공원의 지아르데니아를 찾은 베니스에서의 두 번째 날. 이번 2013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엔 총 88개국이 참가하였고 지아르데니아에 모여 있는 국가관은 나라 별로 전시를 하므로 그 나라의 개성과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색다름이 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이번 비엔날레엔 10개국의 새로운 국가들이 참여하였단 사실이다. 바티칸, 쿠웨이트, 몰디브, 바레인, 코소보, 바하마, 코트디부아르, 투발루, 앙골라, 파라과이 등 이러한 생경한 국가들이 각 나라에 맞는 주제를 갖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전 세계 미술인의 축제라는 말이 실감 났다. 어쩌면 먼 훗날엔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10개국의 소규모 국가와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 현대 미술계를 이끌어나가는 국가 중 특히 나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는데,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흥미는 물론 그 안에 숨겨진 의도 또한 훌륭하였다. 바로 러시아의 바딤 자하로프 (Vadim Zakharov)의 다나에 (Danaë)란 작품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다나에와 제우스의 관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인데 인간의 욕심과 부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러한 현대인의 아집을 꼬집는 작품이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시는 다나에란 이름의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딸이 나이가 들어 결혼 적령기가 되었는데 손자의 의해 죽임을 당할 거란 신탁을 받고 왕은 다나에를 탑에 가두게 된다. 그러나 바람둥이 제우스가 그녀를 보고 반해 금비로 변해 내려와 다나에를 임신시키고 사이에 페르세우스란 아들을 낳게 되는데 신탁대로 왕은 손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 신화는 '운명을 거스르려 하지만 결국 운명대로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가 현대 자본주의의 물살에 휩쓸려 결국 다른 국가들과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러시아의 상황을 풍자하는 것이다.
맨 처음 러시아관에 들어갔을 때 통로를 지나 여자들만 출입 할 수 있게 제한시켰는데 각자에게 우산을 나누어 주어 참여를 유도하였다. 여자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금비를 맞으며 돈을 줍게 되는데 이 돈은 본인이 가져도 되고 혹은 나갈 때 바닥에 놓인 양동이에 돈을 넣게 준다. 양동이가 어느 정도 차면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나 그것을 가져가고 기계에 돈을 다시 부어 계속 금비를 내리게 해 반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자들이 금비를 맞고, 돈을 줍는 행위를 땅콩을 까먹으며 무심히 쳐다보는 남자가 있는데 여자와 금비가 물질 만능주의를 상징한다면 그것을 위에서 바라보는 이 남자는 제우스, 즉 현대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경제 강대국의 자세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러시아의 신화 이야기를 뒤로하고 간 곳은 기대하고 있던 한국관 이었다. 뉴욕에 거주하며 국내 외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인 김 수자의 '보따리(Bottari)'이란 작품인데 한국관 건물 전체를 오브제로 보아 보따리로 인식해 영롱하게 반짝이는 반투명 필름으로 전체를 싸 관객들이 보따리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도이다. 그 안에서 관객들은 작가의 숨소리가 녹음된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를 들으며 마치 그 공간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으며 번호표를 뽑아 기다려 들어갈 수 있는 암실에서 타인과 몸을 부대끼며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1분간의 시간을 가진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의 숨소리와 타인의 숨소리를 들으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언제일까. 1분의 시간이 아쉬울 만큼 짧아 충분한 감흥을 느끼긴 어려웠지만,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있었다. 반투명한 벽은 빛이 들어올 때마다 각도에 따라 환상적인 색채를 뽐냈고 땅과 하늘을 구분 짓지 않는 거울 기법으로 그 신비로움을 더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길게 늘어선 줄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에 줄어들 줄을 몰랐고 암실에 들어가는 것 역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폐쇄 공포증에 대한 안내 때문에 서명을 하는 것 역시 효율적이지 못하였다. 차라리 그것에 대한 표지판을 설치했다면 어땠을까. 기다림 끝에 입장에 성공하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는 탓에 그 아름다운 색채를 미쳐 다 감상하기도 전에 뒤에 기다리는 관객들의 따가운 시선에 서둘러 보고 나와야 했다. 물론 모든 현대 미술이 통통 튀고 가벼울 필요는 없지만 88개국의 미술 올림픽을 시청하고 나와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물었을 때 과연 한국은 몇 번째나 될까.
그러한 깊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엔 미술 강대국의 전시를 감상하였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이 우호 조약 체결 50주년을 기념, 양국이 서로 국가관을 바꿔 전시 하였는데 특이하게도 독일관에서의 전시는 독일인 아티스트가 아닌 아이웨이웨이란 중국 작가였다. 그는 쓰촨 성 지진에서 건진 삼발이 의자를 서로 엮어 거대한 오브제를 만들어냈는데 중국의 오늘날에 대한 이야기와 정부의 비리, 그 사회성의 어두운 측면을 예술 작품을 통해 폭로하는 그는 중국엔 눈엣가시인 아티스트이지만 전 세계적으론 수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그런 그를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관에 전시 하게 해준 독일의 깨어있는 예술관이 놀라웠다. 그 외에도 영국의 전통적인 문양과 소재들을 현대 미술에 적절하게 녹여 전시하며 한쪽엔 카페를 만들어 영국 차를 마시며 관객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영국관, 바닥을 드릴로 뚫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얼굴을 똑 닮은 조각상을 만들며 마지막엔 각자 마이크로 자유를 외치는 아티스트들을 보여준 이스라엘의 파격적인 퍼모먼스 비디오 또한 놀라웠다.
다양한 국가와 다양한 개성만큼 볼거리가 많아 마치 짧은 세계 여행을 다녀온 듯했던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틀간의 일정이었지만 풍부한 예술의 바다에서 헤엄친 듯 많은 것을 배웠고 흡수하였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