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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이 Jun 27. 2024

나는 엄마와 같지 않아요.

저는 저대로 살아볼게요.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간 후에 한참을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도 생각이 많아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엄마 없이 둘이 이야기해 보자 했다. (결혼을 주로 반대한 사람은 엄마였다.) 그래서 그날 일이 끝나고 아빠와 둘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었다. 어색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도 나의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말해줄래?"


나는 아빠의 첫 질문에 힘든 일에도 정말 열심히 사는 남자친구의 생활에 대해 말했다. 생활력도 있는 사람이고 재테크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를 배려해 주고 듬직하며 성실한 사람이라고 어필했다.


"그렇구나. 그럼 엄마 말고 아빠한테 먼저 말해보지. 엄마는 좀 민감할 수 있어."


딸의 결혼에 대해 보통은 아버지쪽이 더 예민하게 굴기도 한다는데, 나는 왜 엄마가 더 민감할 수 있다는 건지 궁금했다.


나는 "왜?"라고 물었다.


아빠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이 결혼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아빠는 과거로 돌아가 아빠와 엄마의 결혼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의 집안은 꽤 잘 살았고 아빠의 집안은 그럭저럭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할 때쯤 양가의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쉴 새 없이 돈을 벌어야 했고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낳고도 엄마는 외할머니께 나를 맡겨놓고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는 암에 걸려 편찮으셨고 외할아버지는 빚을 남긴 채 돌아가셨다. 아빠는 직장생활로 버는 급여로는 세 딸과 아내, 그리고 양가 부모님을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아빠는 결국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업 초반에는 돈이 없어 많이 힘드셨다고 한다. 원래도 자본금이 없었는데 사업을 유지하고 일을 해나가려고 하니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빼고는 모두 공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도 집에서 계속 프리랜서 일을 하시고(신발 디자이너셨다.) 그 돈으로 생활비를 메꿔갔다. 우리의 돌반지며 부모님의 결혼 예물이며 다 팔아 모자란 직원의 월급을 채웠고, 사업을 일으키는 데에 집중했다. 아빠의 사업이 조금씩 성장하고 잘 되기 시작하며 빚을 갚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기 시작한 날은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였다.


 아빠는 과거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시며 엄마는 그런 고생을 딸에게는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엄마를 이해하라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부모님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감사함의 깊이도 커졌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자신의 딸들은 좋은 옷 입히고 맛있는 음식 먹이며 자라게 했으니, 그런 고생은 자신들로만 충분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은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에게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엄마와 아빠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나의 의견과 가치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결혼하고 싶었던 상대는 빚이 없었다. 좀 더 풍요로운 집에 시집가길 바라는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알겠지만, 엄마 아빠가 그런 인생을 꾸려왔다고 해서 내가 그런 인생을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에 서로 힘든 것도 없고 그저 집안의 재정적인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거기에 얽매인다는 상황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부모님보다 더 잘 살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더 잘난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질지 누가 아는 일인가? 나는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나의 결혼에 대해 반대한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하며 아빠에게 말했다.


"어제 아빠가 말한 거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엄마가 그렇게 반대하는 이유도 알겠고 이해도 돼. 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거잖아."


아빠는 내 말을 듣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래도 아빠는 걱정이 되셨을 것이다. 딸을 믿고 싶을 텐데 걱정은 되시고... 두 분이 힘든 일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그래도 알았으니깐.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도움 없이도 잘 사는 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 그들도 나를 믿고 나의 온전함을 바라봐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내가 부모님 없이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어. 혼자 자립한 모습을 본다면 그들도 어쩌지 못하실 거야.'


그렇게 나는 일단 결혼을 미루고 스스로 더 단단해지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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