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진 Aug 31. 2021

나는 엄마의 불운을 씨앗으로 잉태됐다.

나는 어쩌다 세상에 왔을까?

이 세상에서 부모의 간절한 바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제발 나의 아이로 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 하늘에 닿아, 숭고한 한 생명으로 오는 일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때의 엄마, 아빠의 마음을 내가 알 길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엄마의 불운의 씨앗이 되어 이 세상에 왔다.

아무렴 피와 살을 나눈 자식인데 생긴 것이 행복한 순간도 있었겠지.

무조건 불행하기만 했을까.

마구 미워하기만 했거나, 어마어마한 학대를 한 적은 없었으니 부모님께도 행복하다 여겨질 때가 있었으리라.

그러나 아버지의 역할을 모르고 자란 아빠와 따뜻한 가족애가 없었던 엄마의 결혼은 불운의 씨앗이 된 나로 인해 억지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엄마는 왜 불행의 불구덩이로 스스로 들어간 것일까?

추측컨대 곱상해 보였던 아빠의 외모가 이유의 전부였을 거라 생각된다.

엄마의 콤플렉스에 대한 반발심리가 그저 외모라도 반반하면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엄마의 눈을 어둡게 했고, 가장의 역할은 당연히 장착됐을 거라 지레짐작하여 인생 전체를 두고 카지노판에서 칩 전부를 밀어 넣듯이 올인을 했다.

그렇게 시작부터 잘못된 만남이 된 것이다.




엄마는 늘 배가 고팠다.

나를 배고 먹을 것이 없어 밀가루로 겨우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것이 전부였다.

집에 쌀 한 톨 없어도 변변한 직업이 없어 벌어오는 돈이 없던 아빠 때문에 끼니도 못 챙기는 일이 허다했다.

차라리 입덧이라도 있었더라면 좀 나았을까?

입덧도 없이 주린 배를 참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살과 뼈를 앗아 열 달이 되자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게 된다.

엄마는 산통을 겪기 시작하고 사흘이 흘렀음에도 내가 나올 기미가 없자, 의사는 산모도 아이도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늦기 전에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엄마에게 권유했다.

하지만 엄마는 죽어도 제왕절개는 할 수 없다고 버티며 그냥 자연 분만하겠다고 했다.

제왕절개를 하면 내야 할 수술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만하는 것에만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하고 나를 낳는 순간까지도 돈 걱정을 했다.

제왕절개 수술비, 후유증으로 입원할 입원비는 엄마에게 허락될 수 없는 사치 중의 사치였다.

나는 나대로 죽지 않기 위해, 엄마는 엄마대로 생명을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국 자연분만에 성공하게 되었다.

겨우 2.45킬로그램.

0.5그램이 부족해서 인큐베이터로 가야 했지만, 제왕절개도 포기하고 자연분만을 고집했던 엄마를 알기에 의사는 저체중이지만 괜찮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면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

그래도 엄마에게 더 큰 걱정거리 하나는 덜고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던 추운 겨울 새벽, 이 세상에 무사히 도착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