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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Dec 22. 2021

은둔자

19살, 실패자의 기억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마자 차가운 겨울만큼 호된 현실을 맞고, 할머니 두 분이 연이어 소천하셨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도 무던하게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어둡고 깊은 터널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첫 아르바이트에서의 상처받음과 연이은 아르바이트들에서의 고배는 나로 하여금 무가치를 깨닫게 하는 일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무능력하고 가치도 없고, 수월해 보이는 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는 결국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1년 여의 시간 대부분을 그저 누워있는 것에만 소진했다.

돌아보면 너무나 아까운 나의 19살을 그 따위로 날려 보냈다.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동생이 학교 가고 없고, 엄마가 일을 나간 후, 아빠가 들어오건 말건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철저히 누워있기만 했다.

아빠와는 일종의 냉전이기도 했고, 나는 아무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 준비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럴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누워만 있었다.


나만 깨닫지 못했을 뿐,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


학교 다닐 때 연예계에서 어떤 이의 안타까운 사건들이 들올 때도 친구들과 떠들면서 말하기를, 나는 생명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고 농처럼 말하곤 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나는 아무리 세상이 지옥 같아도 내 생명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강력한 방어기제가 있었기 때문에 집이 그렇게 소용돌이를 쳐도, 내가 힘이 들어도 이겨낼 수 있었다.

특히 무기력이 내 몸 전체를 지배하게 된 은둔형 외톨이 시절조차 몸은 바닥에 드러누워 있을지언정, 나중에는 좋은 날이 오겠지라며 막연하게 긍정의 신호를 주곤 했다.

그런 성격 탓에 우울증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려졌어도 나쁜 생각 같은 건 안 할 수 있었다.

세상 어떤 나쁜 상황보다도 내가 소중하니까라는 그 마음이 나를 버티게 해 줬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싹은 엄마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엄마는 학창 시절 아팠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지만, 나와 동생을 어떻게든 키우고, 버티고, 이겨내는 걸 봤기 때문에 나는 반대로 강력한 정신의 싹을 받은 것 같았다.

무기력과 게으름에 내 모든 것을 지배당했지만, 그 1년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끝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이후 긴긴 시간은 정말 쉴 틈 없이 달려오게 되었다.

인생의 굴곡에서 내려가는 지점에 있어도 언젠가는 벗어난다는 것을 직접 겪게 된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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