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의 순간, 순간들.
1
요즘 사랑이 하원은 거의 외할머니의 몫. 오늘은 데리러 가보니 마당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단다. 마당 한 켠에 핀 꽃을 보고는 다가가 꽃향기를 맡았다고. 마당에 계시던 선생님은 사랑이 덕에 그 자리에 꽃이 있는 걸 알게 되셨다고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집 근처 교회 앞 화단에 멈춰서는 사랑. 화단에 심어진 노란꽃 앞에서도 꽃향기를 맡는다. 외할머니가 "사랑아 무슨 향기가 나?" 물으니 사랑이 하는 말. "노란꽃향기!"
2
밥 먹다가 갑자기
"사랑이 ㅇㅇㅇ(어린이집) 잘 가따와쓰니깐 외계인 아스크림 주까?" 하는 아이.
그건 엄마나 아빠가 하는 말인데 이렇게 선수를 치다니.
3
사랑이가 요 며칠 사이 부쩍 밥 양이 늘은 것 같다. 오늘 저녁엔 아빠표 미역국에 외할머니표 콩나물 무침과 물김치, 엄마표 두부계란찜과 보리굴비를 먹었다. 그중에서도 물김치를 특히 잘 먹었는데 배추랑 무를 아삭거리며 먹고, 한번씩 물김치 국물 떠 먹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마치 어르신 식사 풍경 같았다는. 잘 먹는 사랑이를 보면 너무 행복해 배가 부르다.
4
오랜만에 사랑이 머리를 잘라주었다. 욕실에서 색깔놀이 시켜주고 빗질해가며 가위로 빠르게 자르는데 앞머리 라인 맞추다 길이가 점점 짧아졌다. 머리를 다 말린 사랑이 모습은 영락없는 도토리. 안방 이불 위에서 뒹굴며 함께 사랑이 도토리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5
카톡으로 아빠 일하는 사진이 전송되었다. 여럿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는 어딨지?” 하니 "여기!" 하고 자신있게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는? 어디야?" 묻길래 "여기? 아빠 일하시는 곳이지. ㅇㅇㅇ~" 했더니 "ㅇㅇㅇ? 사랑이도 ㅇㅇㅇ 가 본적 있는데?" 그런다. 우리 사랑이 거기서 당근주스랑 빵 먹는 거 좋아하는데 못 간지 한참이네. 어서 코로나 끝나고 자유롭게 나다니고 싶다.
2020.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