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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치 Mar 30. 2024

헤매이는 나날

나는 아직도 모험 중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학창시절에 접했던 RPG 게임 덕분에 게임 개발자를 꿈꾸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도 인문계가 아니라 게임 만드는 걸 배울 수 있는 공고나 뭐 그런데로 가려고 했다. 온 집안이 반대하는 걸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국 인문계고로 향했고, 거기서 만난 친구덕분에 게임 개발자의 꿈은 판타지 소설가로 전환되었다. 덕분에 진학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학에 입학하고 꿈에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다도 더 잘쓰는 친구들은 많았고, 그에 비해 난 게을렀다. 게을렀나? 모르겠다. 눈은 휘둥그래했고, 예술한다고 이것저것 찔러보고 싸돌아다니고 술을 마시고 사랑에 빠졌다. 노가다 판에서 일하면 그 돈가지고 또 술 마셨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했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서 공무원을 준비하면 어떠냐고 했다. 공부를 했다. 하지만 진전은 없었고,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또 다시 헤매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게임을 다시 만났다. 지금까지 전자기기로 하는 게임만 알았는데, 그런 게임만 만들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기 없이도 돌아가는 게임이 있었다. 


게임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만들기 시작했고, 회사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쯤 되니까 뭔가 이상했다. 재밌어했던 게임이 즐겁지 않았다. 모든 게임이 그저 그랬다.


그러다가 젤다를 만났다.


젤다의전설: 야생의 숨결 트레일러 영상

고등학교 친구가 스위치를 싸게 넘겨준다면서 나에게 팔았다. 젤다도 같이 끼워줬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게임이었지만 나는 그게 또 뭔가 싶었다. 그러다가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젤다 속 세계에 빠지고야 말았다.

 

링크와 영걸들. 세계를 구하고자 뭉친 이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줄여서 '야숨') 게임은 지금까지 느꼈던 여느 RPG와는 달랐다. 처음 시작할 때 몇 가지 이동에 대한 안내를 하고 나서 끝이다. 시작의 대지라는 곳에서 나는 링크가 되어서 세계에 대해서 학습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워낙 컨트롤에 서툴어서 능숙해지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하지만 야숨은 나를 기다려줬다. 그렇게 느꼈다.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 묵묵히 서있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링크의 친구들을 만났다. 세계 속에 있는 이들과 모험을 했다. 


흠뻑 빠졌다.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 어디든 스위치를 가지고 다녔다. 최근을 생각해도 이 정도로 흠뻑 빠진 게임은 없었다. 심지어 이후 젤다 시리즈도 야숨만큼 하지 못했다. 


야숨 속 세계는 나를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었다. 힘을 모두 잃어버린 나에게 그들은 아직도 나를 믿고 있었다. 세계 속에서 충분히 나는 실패할 수 있었고, 흥미있는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난 하이랄을 구했다. 결국. 

그 후에서야 다시 게임이 재밌어졌다. 


왜 야숨 이후에야 게임이 재밌어졌을까? 스토리때문일까? 아니면 오픈월드라는 게임 장르가 내 취향인지 알게 되어서? 모두 다 일수도 있고, 내가 아직까지 모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야숨 트레일러만 보면 뭔가 마음이 울컥인다. 


그래도 차분히 생각해보면 야숨 속 세계는 위험이 닥쳤음에도 급하지 않았다. 세계는 언제든지 나를 반겨줄 준비가 되어있고, 기다렸다. 약한 몬스터도, 강한 몬스터도 내가 해치웠음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했다. 항상 세계는 내 성장과 성공을 위해 준비되었다.


현실에서는 나와 상관없이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도 차갑기 그지없다.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나의 활약과 성공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세계. 


이렇게 쓰고 나니 다시금 그리워진다. 그 때의 환희와 경험. 하지만 이미 경험한 걸 다시 경험할 수는 없다는 게 또 게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 다른 게임을 찾아 헤매나보다. 야숨 때의 재미를 느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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