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느낌 그대로?
대학교에서 애들이랑 같이 술 먹고 있을 때였나? 연애하고 있을 때 언제가 좋은가. 라는 질문에 목소리를 높이며 토론 아닌 토론을 했었다. 셋 중에 둘은 썸이 좋다고 했고, 나는 싫다고 했다. 싫어하는 이유와 좋아하는 이유가 비슷했다. 아직 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한 사이만은 아닌 어중간한 관계에 놓였을 때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썸이 좋고 나쁨은 어디까지나 관점 차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묻는다면, 썸보다는 연애를 시작할 때가 좋다고 말할 거다.
뱅이란 보드게임이 있다. 출시된 지 이제 거의 20년이 지난 게임이지만 대형마트에 가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게임이다. (아쉬운 건 게임이 어려운 건 아닌데, 아이템 카드가 많아서 그 카드를 설명하기가 번거롭다.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이 옆에 붙어서 카드를 물어보면 그걸 알려주면서 하면 좋긴 하다. 그것도 안되면 그냥 해보면서 배워도 좋다. ) 여러 번 플레이하면서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부분을 관찰해 보면 아무래도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놈을 찾아내는 재미다. 말하자면 이 게임은 마피아 게임의 변형판이다.
마피아 게임이란 게 매 라운드마다 토론하면서 살릴 놈 추리고, 마피아처럼 보이는 놈 찍어서 투표로 제거하면서 하는 정치 싸움 느낌이 있다면 뱅은 그에 비해 나 스스로가 선택할 여지가 많다. 서부시대 속 총잡이들을 보았는가? 그들은 항상 총 한 자루에 목숨을 걸었다. 플레이하면서 내 적일 거 같은 놈에게 총을 갈긴다.
그러면? 맞은 놈은 항변을 할 거다. 그 항변을 다른 총잡이들도 지켜본다. 왜냐하면 보안관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보안관에게 모두 자신이 당신의 편이라며 윽박지르기도, 아부를 떨기도 한다. 어떤 이는 아예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만의 추리를 이어 나간다. 그리고 빵(Bang!)!
마을에 하나둘씩 시체가 쌓여가면 그제야 보안관은 자신이 쏜 총이 향한 곳을 안다. 마을을 불안케했던 무법자였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무법자와 배신자에게 속아서 부관을 쏜 일도 부지기수. 부관을 잃은 보안관은 너무나도 막막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적이기에 마음껏 총을 쏠 수 있다. 내 적은 서로의 정체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게임에서 무법자는 보안관만 죽으면 이긴다. 하지만 배신자는 배신자만이 살아남아야 승리한다.)
그런데 게임을 하던 중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총 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정체를 숨기고 있고, 혹시라도 내가 내 편을 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 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자신은 쓰러져있다. 어안이 벙벙하다.
뱅에서 누군가를 공격하는 행위는 일종의 테스트이자 대화다. 총을 쏘면서 '난 당신이 내 적이라고 생각해'라고 행동으로 표현한다. 상대방은 그 행동을 표정이나 발언 등을 통해서 피드백할 거다. '난 아닌데?' 혹은 '맞았군!' 뭐 이렇게. 그 추리를 가지고 다음 기회를 준비해야만 한다.
결국 내가 썸을 불편해하는 건 그 애매모호함에 머물기를 싫어하기 때문일 거다. 다시 생각해 보면 관계라면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썸이라는 건 내가 보기에는 그 상황에 머물고 싶어 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각을 해서 많이 거절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정리가 된 관계는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거리를 유지한다면 때로는 꽤 오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시도해본다. 가까이하고 싶다면 내가 나서야 한다. 불편해 할 수도 있다. 모두가 나에게 호의적일 순 없다. 하지만 말을 걸지 않으면 이 관계는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지금 애매한 느낌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